항상 11월 첫주 일요일 조상님들 시제가 있는 날이다
옆지기 초등 때 목포를 딱 한번 가봐다고 언제부터인가 목포 노래를 불렀다
나역시도 두번 다녀온 곳이기에 잘 모른다
이번에는 주말에 조금 일찍 퇴근을 하기로 하고 5일날 오후 2시반에 출발을 한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어디가 어디인지 정말 잘 모르겠다
여기가 구 시가지 인 것 같은데 야간에 빛은 반짝거리는데 거리는너무 한산하다
관광안내도를 보니 빛의 거리 같은데 마치 유령의 도시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르네상스시대 말기인 16세기에 이탈리아 나폴리왕국에서 왕비의 행차를 기념하기 위한 장식에서 시작되어
성인(聖人)을 기리고 빛이 가진 정신 가치를 나타내기 위한 종교의식으로 발전한 빛의 축제
(이탈리아어 : 루미나리에) 는 조명으로 건축물을 만들거나 치장하여 축제를 펼치므로 빛의 예술 또는
빛의 조각이라고도 한다.
'걷고 싶은 빛의 거리'는 목포극장 앞 500m와 구 평화극장, 보해상가 앞 400m도로에 5가지 모형과 5가지
색으로 터널식(갤러리아, Galleria) 65개와 소품 10개의 루미나리에가 설치되어 환상적인 야경을 365일
감상할 수 있다.
그래도 주위에는승용차들이 주차해 있는 것을 보니 영업을 하는 곳들이 있긴 있나보다
목포역
1913년 5월 15일 호남선의 목포∼학교 간 개통으로 역사 준공과 함께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한 우리나라
최서단에 입지한 철도역이다. 1979년 7월 3일 역사를 신축 준공하였으며, 2004년 4월 1일 KTX 열차가
운행됨으로써 역사가 증축되었다. 호남선 KTX, SRT, ITX-새마을, 무궁화호가 이 역을 기점으로 운행한다.
사실 야간에 그리고 목포의 지리를 잘 모르니까 밤에 다니다 길을 잃을 수도 있겠다 싶어
운전하느라 수고 했다고 옆지기 치맥을 시켜 테이크아웃 숙소로 향한다
구 동본원사 목포분원(오거리 문화센타)
오거리문화센터는 구 동본원사였다. 동본원사는 목포에 들어선 일본 첫 불교사원으로 정식명칭은 '진종 대곡파
동본원사'이다. 동본원사 목포별원은 1898년 4월에 세워졌으며 목포심상고등학교 설립인가를 받아 목포 내에서
일본인 소학교로 최초ㆍ정식 운영되기도 했다.해방 이후 정광사의 관리를 받다가 1957년부터 목포중앙교회로
사용하게 되어 사찰이 교회가 되는 이색적인 약력을 가지게 되었다. 2010년 1월 19일에 오거리문화센터로
개관하여 각종 문화행사 및 전시회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음날 이곳을 들려보기로 했으나 케블카 타로 가는바람에 들리지 못하고 이렇게 외관을 보는 것으로 만족을 했다
목포 청소년문화센타
야간에 무슨 운동인지는 모르겠지만 에어로빅 비슷한 강좌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다음날 아침 목포진 역사공원으로 왔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중 목포진지
목포지역은 예부터 내륙과 해상을 연결하는 군사상의 요충지였는데, 목포진은 조선시대 수군의 진영으로
목포영, 목포대라고 부른다.
조선 왕조 때 각 도의 여러 진에 붙은 종 4품의 무관인 만호가 배치되었다고 해서 만호영, 만호진, 만호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러 기록을 통해서 볼 때 조선 세종 15년(1433)에 목포병선을 황원(현재 해남)으로 옮기고, 세종 21년(1439)에
현재의 자리에 목포 만호진을 설치하였으며, 개항과 함께 고종 21년(1895)에 폐진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목포 만호진의 성이나 유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원래 위치는 대략 현재의 목포시 만호동 일대일 것으로
추측되며, 이 일대 민가의 담장이나 축대에서 당시의 돌을 확인할 수 있다.
만호진의 성은 일본 영사관, 영국 영사관 기지로 사용되다가 민가로 전용되었으며, 만호동 공터에는 목포진
유적비라고 적힌 비석이 있다.
목포진 유적비
폐진 직후인 개항당시만 해도 청사의 일부가 남아있어 무안감리서, 일본영사관 또는 역국사관 기지로 사용 되다
훼손되어 목포진 유적비만이 남아있던 곳을 2014년 현재의 모습으로 일부 복원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사라졌던 군사기지가 120여년만에 역사공원으로 복원돼 역사 문화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목포진을 걷다보면 아래쪽에 소년 김대중 공부방이라는 안내문구가 있다
아침이라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소년시절 여기서 공부를 한 곳인가 보다
목포진지에서 바라본 유달산
이렇게 안내도가 있지만 찾아다니려면 한참을 헤메야 한다
그래도 오늘은 이곳을 무슨 수를 쓰던 돌아보아야 한다
목포시내의 모습
이곳은목포 구항인 것 같다 아늑한 느낌이 든다
유달산에 올라서 보니 목포 신항이 보이던데 아마 물류는 신항에서 처리하고 여기는 어항으로
사용하지 않겠는가 생각을 해본다
케블카 유달산 정류소와 유달산 1등바위 그리고 노적봉쪽이 보인다
역시 홍어의 고장 목포다 홍어라면은 어떤 맛일까 먹어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아직 영업시간은 아닌듯
목포근대역사관 제1관으로 왔는데 국도 1.2호선 기점 도로원표가 보인다
커다란 돌에는 ‘국도1·2호선기점’이라고 새겨졌다.
이 푯돌이 있는 삼거리가 국도1호선과 2호선이 출발한 지점이자, 한국 도로 역사의 기념비적인 장소다.
국도1호선은 목포에서 광주, 전주, 익산, 공주, 수원, 서울을 지나 개성과 평양을 거쳐 신의주까지 한반도를
관통하는 939km 도로다. 더 멀게는 중국을 거쳐 유럽으로 뻗어갈 수 있는 유라시아 횡단로의 시작점이다.
국도2호선은 목포에서 강진, 순천, 진주 등을 거쳐 부산까지 한반도 남쪽을 횡단하는 도로다.
영사관이 자리 잡은 뒤 일제는 목포역과 함께 사방으로 도로를 건설하고, 인근에 우체국과 경찰서, 법원,
상공회의소 등 각종 행정기관을 설치했다. 이 일대가 목포 근대사에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목포는 한반도의 끝자락으로 알려져 있는데 목포가 영산강과 바다가 만나는 길목이라는 지명의 뜻을 지니고
있듯이, 목포는 한반도의 끝이 아니라 출발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 국도1호선 도로원표와 기념비이다.
근대적인 도로 개통의 출발지로 대의동 2가 1에 위치해있으며 1번 국도는 1906년도에 착공하여, 1911년경
개통된 도로로 목포에서부터 서울을 지나 신의주까지 939.10km이며 2번국도는 목포에서부터 부산까지
377.9km인데 이 1번 2번 국도의 출발점이 바로 목포이다.
도로원표는 이를 상장하기 위한 것으로 현 도로원표는 2000년 9월 18일에 조성된 것이다.
도로원표 바로 뒤에는 이곳이 대한민국 근대 도로망의 출발지임을 기념하기 위한 국도1호선 기념비가
건립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전쟁 물자를 실어나를 목적으로 만들어 졌으며 1호선 공사는 중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투입
되었고, 목포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국도 2호선의 경우 동학농민군이 주요 노동력이었다.
현재의 국도 1호선은 기점이 2012년 6월 29일 목포대교 개통과 더불어 충무동 고하도로 옮겨졌고,
총 연장 943.37km로 4.27km가 연장되었으며, 국도 2호선은 노선변경으로 인해 신안군 장산면 오음리로
기점이 옮겨져 총 연장 475.08km로 97.65km가 연장되었다.
평화의 소녀상
(영어: Statue of Peace) 혹은 위안부 상(일본어: 慰安婦像 이안후조[*])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확립하기 위한 예술 조형물(동상)이다. 평화비(平和碑)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상의 모양은 의자에 앉아있는 모양과 서있는 모양이 대표적이다.
아직 개관전이라 문이 굳게 닫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