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카를 타고 고하도와 유달산을 대충 돌아보고 이곳 근대문화역사관 제1관으로 왔다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이 건물은 1897년 10월 목포항이 개항되고, 1898년 10월 목포 일본영사관이 목포에
설치됨에 따라 영사관으로 지은 것이다. 일본은 영사관이 건립되기 전까지 조선정부로부터 만호청
(1895년 폐진된 목포진)을 빌려 사용하였고, 유달산 고지대에 가건물을 지어 이관하였으며, 다시 현재의
위치인 대의동에 목포일본영사관과 부대시설인 경찰서·우편국 등을 함께 마련하였다.
당초 일본영사는 무안 감리에게 목포 일본영사관 부지 16,028평방미터를 요청하였으나, 이 신청을 접수한
조선 정부는 9,483평방미터 만을 승인하였다. 공사비 7만여 원을 들여 1900년 1월에 착공하여 12월에 완공한
것으로 일본인들의 기록이 전해온다. 이후 목포 이사청, 목포부청사 등으로 사용되었고, 광복 이후 1947년부터
목포시청, 1974년부터 (구)목포일본영사관, 1990년 1월부터는 목포문화원으로 사용되다 최근 목포문화원이
이전함에 따라 보수 후 2014년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개관하였다.
목포진
그당시의 목포 거리의 시대상들
부산 원산 인천에 이어 4번째로 목포항이 개항했다
대영 국정부 기지 비와 목포 각국 조계 비
역사관 안에는 개항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목포의 역사와 유물, 건축 등이 소개되어 있고 밖으로
나오면 역사관 뒤쪽으로 방공호가 있어 당시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등 근대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일본인의 조계지 독점과 일본 영사관
고하도가 육지면 재배의 발상지임을 기념하기 위해 1936년에 세운 것이다.
비의 전면에는 ‘朝鮮陸地綿發祥之地(조선 육지면 발상 지지)’, 후면에는 ‘明治37年(1904년)에 목포주재
대일본제국 영사 약송토삼랑(若松兎三郞)이 고하도에서 처음으로 육지면 재배를 시작했다’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고하도에서 육지면 시험재배가 성공하자 육지면이 전국으로 보급되었으며,
전라남도의 면화는 이 지방의 특산물로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았다.
의병들의 모습
부두 노동운동
일본인들의 농지매입
4 · 8 만세 운동 재현 체험할 수 있는 곳 한복을 입고 사진도 찍을 수 있음
미니어처로 만들어진 일제강점기 때의 오거리 모습 목포의 중심지였던 오거리 모습을 재현함
목포 양동교회
농토를 헐값 매입 농사를 지어 일본으로 가져갔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기계가 목화의 씨를 빼내는 기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조선인들이 사는 곳을 북촌이라 했다
도로 주택 전기 상하수도 의료시설 등이 매우 낙후되었다
일본인 거리가 형성된 구 각국 공동 거류지는 유달산 남쪽 지역에 건설되어 남촌이라 불리었다
일본인 거리는 반듯하게 구획되고 포장되었으며 가로등이 설치된 근대적 도시의 면모를 보였다
또한 목포부청 경찰서 소방서 상공회의소 등 공공기관과 조선은행 동양척식 주식회사 금융조합 등
각종 금융기관과 학교 병원 등 각종 시설이 들어섰다
1983년 정명여학교 선교사 사택 천정에서 발견된 독립가
1930년대의 신식 생활용품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로서 목포 공립 심상소학교
목포 공립 상업 전수학교 목포 고등 여학교 등을 세웠다
20세기 초 이래 목포에는 조선인들이 세운 목포 공립 보통학교와 문태중학교를 비롯하여
기독교 선교사들이 세운 정명 여학교와 영흥학교 등 다양한 학교가 들어섰다
이로써 목포는 교육도시의 면모를 지니게 되었다
개항 이후 목포에는 천주교 개신교 등의 기독교와 일본의 신사와 불교 등의
외래 종교가 들어왔고 조선의 불교 천도교 시천교 등도 들어왔다
일본 불교와 신사의 침투
우편 전신전화 이용
인력거 등장
자동차 등장
그시대 등장한 인력거
신사 참배 강요 창씨개명
일본어 강제 사용
인력을 강제 동원하고 쌀을 공출하여 배급제를 실시하였다
그 시대에 사용했던 원형 벽난로
일제 방공호
일본인들이 긴급할 때 대피용으로 쓰였던 공간이지만, 주로 조선인을 동원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유달산 방공호
일제 강점기에 목포는 쌀과 면화 수출 등으로 꽤 잘 나가던 항구였습니다. 일제강점기 경상도 지역의 쌀은
부산항을 통해, 충남, 전북지역의 쌀은 군산항을 통해, 그리고 전남 지역의 쌀은 목포항을 통해 일본으로
보내졌기에 목포에는 많은 일본인 미곡상들이 거주하여 호남지역에서 가장 많은 일본인들이 모여사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일제강점기의 건축물+근대건축물의 산실로 일본인 구역이었던 유달산
아래 목포여자중학교 근방과 구시가지에는 눈에 띄는 건물들이 다 준문화재급으로 오래된 건축물들입니다.
그러나 이는 보존하려고 해서 보존한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이 그 이후로 거의 개발되지 않아서이다.
예를 들어 경성, 부산, 대구, 대전 등지에는 목포보다 훨씬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했지만 개발의 물결을
타고 일제의 잔재가 많이 사라진 반면 목포는 해방 이후 개발이 더디어 이런 건축물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목포의 시계는 멈춘 곳, 보존하려고 해서 보존한 것이 아닌 개발이 안돼 보존된 지역이 바로 목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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