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둘러봐도 달아나는 가을은 기보배의 과녁을 향한 화살처럼 가속도가 붙어
빨리도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더 붙잡아 놓고 싶은 생각은 비록 저뿐이 아니겠지요
어떻게라도 가을의 흔적을 더 담기 위해 오늘도 범어사 골짜기로 발길을 옮겨본다(11/22)
운전하고 가면서 바라본 참나무들이 아직 옷을 갈아입지 않고 있어 잠시 정차하고
첫 장을 담아본다
조금 전진하여 범어사 매표소 차량 입장료 3000원 할인해서 1000원에 입장을 한다
범어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바라보이는 풍경은 감탄사가 나올만도 하다
주차장 아래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정산으로 오르는 길의 화장실 앞인데 붉은 색이 맑기도 하고
이제 단풍이 한창인 것처럼 화사하기까지 한다
굴참나무인지 참나무인지는 모르겠으나 단풍나무와도 견줄 수 있는 색감이 눈이 부실 정도다
일주문(一柱門)은 만법(萬法)이 두루 갖추어져 일체(一切)가 통한다는 불교의 진리가 담겨 있어서 삼 해탈문
(三解脫門)이라고도 하며, 사찰 건물의 기본 배치에 있어서 사찰 경내로 들어갈 때 제일 먼저 지나는 문이다.
부산 범어사 조계문은 사역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으로서 어간에 ‘조계문(曹溪門)’, 좌우 협찬에는
각각 ‘금정산범어사(金井山梵魚寺)’와 ‘선찰 대본산(禪刹大本山)’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부산 지역의 독특한 일주문으로, 다른 사찰의 일주문과는 달리 특이하게 돌기둥으로 지붕을 받치고
있는 형식이다. 그런데 이 돌기둥은 원래 기둥이 아니라 장초석(長礎石)[다락집이나 정각(亭閣) 등에서,
길게 세운 초석]이다. 즉 주춧돌이 기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장초석은 지상에서 1.45m 정도
높이로 세운 배흘림을 가진 원통형 기둥인데 4개가 동일한 간격으로 일렬로 서 있다. 장초석 위에는
나무 기둥을 세워 겹처마의 맞배지붕을 받쳤으며, 지붕 양 측면에는 방풍판(防風板)을 달았다.
[출처] 향토문화전자대전
대웅전과 지장전 뒤에도 불타는 단풍으로 눈이 휘둥글해진다
범어사
부산 금정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천 년 고찰 범어사는 신라 문무왕 18년(678년) 의상 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산의 꼭대기에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않는, 금빛을 띤 우물이 있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물고기가 그 물 안에서 놀았다고 한다. 이에 산 이름을 '금빛 우물'이라는 뜻의 금정산(金井山)으로 짓고
그곳에 사찰을 세워 '하늘에서 내려온 물고기'라는 뜻의 범어사(梵魚寺)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범어사는 창건 이후 임진왜란과 화재 등으로 소실되기도 하였지만 몇 차례의 개수 및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해인사, 통도사와 함께 영남 3대 사찰로 꼽힌다.
절은 백 년 노송들에 둘러싸여 있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며, 오랜 역사와 함께 수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고
삼층 석탑, 대웅전, 조계문 등 많은 문화재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 때는 만해 한용운이 범어사에서
공부하던 학생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쓸 태극기를 범어사 암자에서 만들기도 했다.
범어사 후문 쪽의 단풍들
북문으로 가는 길의 단풍 가는 곳마다 만추 황홀경에 빠지다
대성암으로 오르는 길의 단풍
월요일 이어서인지 대성암에는 신도들도 찾는 이가 없고 무척 조용한 분위기다
대성암 가는 길의 좌측 풍경
대성암 오르는 길 우측 풍경
단풍의 애상/고 현영
마지막이 아름답고 싶은 건
사람이나 자연이나
매한가지인가 보다.
선득한 바람이 불고 하늘이 환히 열리니
제 떠나야 할 때를 아는 모양인지
곱게곱게 단장하고 한 줌의 햇살에도
지나가는 바람에도 한없이 밝게 웃는다.
당장 내일 낙엽이 되어 스러질지라도
밤새 아무도 몰래 속울음 삼킬지라도
오늘의 햇볕을 즐긴다.
마치 아스라이 기억 속에
울 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 꽃상여처럼
울긋불긋 단장하고 바람에 몸을 맡긴다.
아득한 슬픔을 감추며..
대웅전 앞에서 줌인해 본 계명암
북문으로 오르는 길은 일정한 거리까지 이러한 암괴류로 형성되어 있다
옆에서 바라본 대성암
범어사 대성암(梵魚寺大聖庵)은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기록에 의하면 1803년(순조 3) 범어사
금강암(梵魚寺金剛庵)과 함께 취규 대사(就奎大師)에 의해 중창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암자 내에 1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신중탱과 1864년(고종 1)에 조성된 아미타 후불탱 등
조선 후기에 조성된 유물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 범어사 대성암이 자리한 위치는 이때부터
유래한 것 같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1910년 범어사 주지로 주석한 승려 오성월(吳惺月)이 범어사
대성암에 ‘각해 선림(覺海禪林)’이라는 편액을 내건 선원을 처음 개설하여 현재까지 명맥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출처] 한국학 중앙연구원 - 향토문화 전자대전
북문으로 오르는 길의 은행나무도 잎이 다지고 낙엽만 수북이 쌓여 있네
외롭게 홀로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 봐주는 이 없어 하늘에라도 닿을 듯 높이 높이
솟아오르는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구나
아직도 싱싱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국화 강인함으로 다가온다
다지고 없는데 무엇이 아쉬워 이렇게 떠나지 못하고 있을까
서러움이라도 남아있을까 기다리는 님이라도 있을까?
멋진 돌담과 계단 그리고 불타오르는 단풍 떠나기 아쉬 워 서성이는 젊은이들
나 역시도 아쉬움으로 살며시 다가가 본다
그동안의 영화는 뒤로한 채 내년을 기약하는 밑거름으로 남기 위한 몸부림
나 여기 있었노라 흔적을 남기고 있네
그 많던 학생들은 어디로 흩어지고 돌아서 담소를 즐기는 학생과 열심히 폰 사진을 담는
남학생의 모습만 보인다
580년 된 은행나무인데 3일 전 블친님이 올린 사진을 보니 잎이 많이 있던데
오늘은 거의 다지고 앙상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청련암 쪽으로 가면서 바라본 화장실 쪽의 단풍도 고운 모습으로
구골목
초암/ 나상국
귀뚜라미 울음소리
잦아들수록
가을앓이는 깊어만 가고
계절을 오며 가며 주고받던
짙푸른 사랑의 연서
뜨겁게 달아올라
혼인색으로
짙은 화장을 한다
떡갈나무 같은데 바람에 살랑살랑 나부끼는 잎이 고와서 또 담아보고
단풍놀이 가는 /현곡 곽종철
유난히도 곱디곱네.
꽃보다 아름답구려.
산이 온통 붉게 물들어
과연 만산홍엽(滿山紅葉)이로구나.
눈앞에 펼쳐지는 오색향연에
노란 미소가 설익은 사랑인 걸
붉은 몸짓이 아픈 사랑인 걸
잠시 잊은 채
그대의 조화(調和)에 홀리는구려.
그대는
아픔을 환희의 꽃으로 피우기 위해
마지막 불타는 연출을 보여주려는데
그대를 찾아온 이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모든 걸 접고
아픔을 씻어보고 싶은 날이란다.
단풍이 남아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찾았던 범어사 아마 지금이 절정기가 아닐까
오늘도 날씨는 흐리지만 만추를 볼 수 있어 보람 있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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