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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울산

밀양 표충사의 유물들

스산한 바람이 불고 날씨도 쌀쌀한 날에 밀양표충사를 찾았다

때가 때인 만큼 겨울이라는 계절 탓에 방문객도 별로 많지 않고 주차장에 차도 별로 없어

경내 주차를 하고 일주문을 거치지 않고 바로 수충루로 들어간다

멀리서 바라본 수충루

수충루는 다른 사찰에 비해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유교의 향교나 사당으로 들어가는 문이(내삼문. 외삼문) 이러한 형태인데 중앙통로와

양쪽 출입문이 따로 있다

이곳 표충사는 호국사찰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표충사(表忠祠)라는 사당이 있고 

표충 서원이 있다 그래서 사당의 내삼문과 같은 문을 채택했다

현재 표충사에는 사명대사와 서산대사 기허 대사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불교와 유교의 혼합형이다

일주문에서 수충루로 가는 양편에는 소나무가 아닌 활엽수림으로 숲을 이루고 있는데

모두 낙엽이 되어 떨어져서 앙상한 나목만 서 있다

수충부 현판

중앙이 표충사(表忠祠) 좌편이 표충 서원 우편이 유물관이다

뒤에 보이는 산은 재약산이다

표충사(表忠寺)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사기(寺記)에 의하면 654년(무열왕 1)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죽림사(竹林寺)라 했으며, 829년(흥덕왕 4) 인도의

고승인 황면(黃面) 선사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할 곳을 동방에서 찾다가 황록산 남쪽에 오색 서운이

감도는 것을 발견하고는 3층 석탑을 세워 사리를 봉안하고 절을 중창했다고 한다.

이때 흥덕왕의 아들이 나병에 걸려 전국의 약수를 찾아 헤매다가 이곳의 약수를 마시고 황면선사의 법력으로

쾌유하자 왕이 기뻐하고 대가람을 이룩한 다음 절 이름은 영정사(靈井寺), 산 이름은 재약산으로 바꾸었다.

고려 문종대(1047~82)에는 당대의 고승인 혜린(惠燐)이 이곳에서 수도했고, 충렬 왕대(1275~1308)에는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이 주석하면서 불법을 크게 중흥하니 1286년 충렬왕이 '동방 제일선찰'이라는

편액을 내렸다. 1839년(헌종 5) 사명대사의 법손(法孫)인 월파(月坡) 선사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명대사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고향인 밀양시 무안면에 세운 표충사(表忠祠)로 옮기면서 가람배치가 크게 변하고

절 이름도 표충사로 바뀌었다. 1926년 응진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청동 은입사 향완(靑銅銀入絲香埦 : 국보 제75호)·3층 석탑(보물 제467호)·대광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석등(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호) 등이 있다. 다음 백과에서

사명대사. 서산대사. 기허 대사를 모신 표충사 사당

표충 서원

유물관

유물관은 아래에 자세히 소개하기로 한다

유물관 앞의 모습

표충사에 있는 고려시대 청동 은입사 향완. 국보(1962.12.20 지정). 높이 27.5㎝, 입지름 26.1㎝. 은입사 기법으로

장식된 불교 공예품의 하나로 명문이 있는 것으로는 가장 오래되었다. 형태는 넓은 전이 달린 완형의 몸체에

나팔형의 받침을 갖춘 고배형이다. 향완 전체에 문양이 음각되어 있는데 넓은 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범자가

새겨진 6개의 원이 있고 그 사이에 구름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몸체에는 역시 범자가 새겨진 4개의 원이 있으며 턱이 있는 밑부분에는 굵은 윤곽선 안에 가는 평행선으로

표현된 중판 앙련이 입사되어 있다. 받침에는 운룡 무늬[雲龍紋]가 회화적으로 시문 되어 있다.

넓은 전의 뒷면에 새겨진 57자의 명문에 의해 1177년(명종 7)에 만든 것으로 용흥사에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향완은 비례가 이상적일 뿐만 아니라 가는 선과 굵은 선을 이용하여 문양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으로 은입사

기법의 정수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사명대사(1544~1610)의 금란가사와 장삼이다. 사명대사는 조선시대의 유명한 승려로 16세에 승려가

되었으며, 임진왜란(1592) 때에는 의병과 승병을 일으켜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가사란 승려들이 입던 법의(法衣)를 말하는데 장삼을 입고 그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던 옷이다. 사명대사 금란가사는 황금색의 중국 비단으로 만들었으며, 가로 270cm, 세로 80cm이다.

현재는 색이 담황색으로 변색되고 훼손도 심하여 본래의 모습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장삼은 검은색이나 흰색으로 만든 길이가 길고 소매가 넓은 옷으로 가사와 함께 승려가 입는 법복 중 하나이다.

사명대사 장삼은 흰색 무명으로 만들었다. 상의와 하의가 연결되어 있으며, 군데군데 훼손은 되었으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길이 144cm, 품 55cm이고, 등솔에서 소매 끝까지의 화장 길이는 143cm이며, 짧은

고름이 달려 있다. 금란가사는 현물이 없씀

 

사명대사 금란가사와 장삼은 착용자를 알 수 있는 유물로서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승려들의 복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송운대사(사명대사) 분 충서 난 록 목판

사명대사 활약도

사명대사의 활약

사명대사의 생애

삼층석탑에서 나온 부처상들

청동 탑편 일괄

사명대사 진영

교지

조선시대 국왕의 말씀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동시에 국왕이 관직 및 과거 합격 증서, 토지나 노비, 기타 특권을

내리는 문서 가운데 첫 행에 ‘교지’라고 적는 문서군을 통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라는 용어가 사용되다가 1435년(세종 17)에 교지를 사용하도록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이들 교지라고 지칭된 문서는 관직 임명 문서인 고신(告身), 과거 합격 증서인 홍패(紅牌)·백패(白牌),

추증 교지(追贈敎旨), 시호 교지(諡號敎旨), 면역 교지(免役敎旨), 사패 교지(賜牌敎旨) 등이 있다.

표충사 목조 관음보살좌상

유물전시관을 보고 본사찰로 올라가 본다

사찰은 여러 번 포스팅을 했기에 생략하기로 한다

https://blog.daum.net/kts450/7398040

사천왕상

팔상전과 대웅보전 칠성전과 명부전 삼층석탑이 보인다

만일로 서래 각선원

필봉

삼층석탑

 

우화루와 범종각

대광 전과 팔상전

대광전 칠성각 명부전

양지쪽 언덕에는 아직도 개쑥부 쟁이가 싱그럽게 피어 있다

맑고 푸른 하늘

대광전에는 8마리의 용이 포효하고 있다

명부전

팔상전

팔상전

삼층 석탐 주위에는 소원지가 많이 걸려 있는데 모든 분들의 소원이 꼭 이루어지길.....

사찰 담 밖의 은행나무도 잎을 다 떨구고 나목만 서있다

들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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