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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장릉

2015년에 친구들과 동해안 일주하면서 돌아본 장릉 오늘도 옆지기 대동하고 다시 왔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지만 옆지기는 처음이기에 같이 올라보도록 한다

낙촌 비각은 아래 설명처럼 단종의 묘를 찾기는 했지만 방치한 것을 박충원이

묘역을 정비하고 예를 갖추었다고 하여 그의 충심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세운 비각이다

비문 내용 

문경공 밀양 박충원 선생 기념비

이번 여행하면서 자주 보게 되는 상사화다

단종비 정순왕후 송 씨의 단종을 사모하는 마음이 상사화라는 꽃으로 변했을까?

장릉 가는 길

단종비 정순왕후 송 씨는 정읍 태인현 지금의 칠보면에서 태어나 14세에 단종과 결혼해

16세에 홀로 되어 동대문밖 숭인문 청룡사 앞 동망봉 기슭에 초막을 짓고 그녀를 따르던 

시녀들과 함께 살았다 단종의 죽음을 듣고 소복을 입고 조석으로 동망봉 거북바위에 올라

단종이 있는 동쪽을 향해 구슬프게 통곡을 했다고 한다

 

정순왕후는 시녀들이 동량 해온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하며 세조가 이를 알고 식량을

보냈으나 끝까지 거절했다고 한다

자줏물을 염색하는 일로 연명을 하며 여생을 살았다고 한다

14세에 결혼 16세에 단종과 생이별 82세에 한 많은 생을 마감했으며

현재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에 모셔져 있다

장릉의 유래( 돌 새김 원문)
장릉은 조선 6대 임금인 단종(端宗 1441~1457)의 능이다.
단종의 이름은 홍위(弘暐)이며 문종의 아들로 세종 23년(1441) 7월 23일 탄생하였다.
세종 30년(1448)에 왕세손(王世孫)그리고 1450년 7월 20일 왕세자(王世子)에 책봉되었다.
그 후 부왕인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승하하자 그 뒤를 이어 12세의 어린 나이로 1452년 5월 18일

 경복궁에서 즉위하였다.

단종 원년인 1453년 숙부인 수양대군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국권을 장악하고 단종을 위협하자 단종 3년(1455) 상왕으로 물러났다.
세조 2년(1456) 사육신(死六臣)의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하자 
그 사건에 연루되었다 하여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 된 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다.

1457년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금성대군 유(瑜)가 단종을 복위하려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세조는 1457년 10월 24일 단종에게 사약(賜藥)을 내리니 17세의 어린 나이로 승하하였다.
이때 영월 호장 엄흥도(嚴興道)가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동을지산(冬乙旨山)인 이곳에 몰래 매장하였다.
그 후 숙종 7년(1681)에 대군으로 추봉 되고 숙종 24년(1698)에 복위되어 
묘호(廟號)를 단종(端宗)으로, 능을 장릉(莊陵)이라 하였다.

장릉은 간소한 후능석물(厚陵石物) 양식이며 
다른 왕릉과는 달리 단종대왕에게 충절을 바친 신하들의 위판을 배향한 배식 단사(配食壇祠)와

 충신단(忠臣壇), 정려각(旌閭閣)이 있다.

칡꽃

장릉

장릉에서 바라본 장판 옥등 부대시설

장른을 오르는 길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조성되어있다

장판 옥

이 건물은 정조 15년(1791)에 건립한 것으로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 위 32인

조사위 186인 환자군 노 44인 여인 위 6인을 합하여 268인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이다

배식단

이곳은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 위 조사위 환자군 노위 여인 위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매년 단종제향과 함께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홍살문과 정자각 장판 옥 제단 영천 등이 보인다

신 즉 왕이 다니는 길

수복실

이 건물은 능과 경내를 관리하는 능지기가 기거하던 곳으로 숙종 25년에

정자각과 함께 세운 것이다

단종비각

영조 9년 (1733)에 어명으로 단종비와 비각이 건립되었다

비석 앞면에는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이라는 글이 음각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단종대왕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정자각

이 건물은 숙종 25년(1699)에 건립하였으며 단종대왕 제향 시 제물을 올리는 곳으로

집의 모양이 정(丁) 자 모양으로 건립된 제전이므로 정자각 또는 배위청이라 한다

수라간

수라는 본래 몽고어로서 탕미를 뜻하며 수라를 짓는 주방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제사 음식을 만드는 곳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엄홍도 정려각

제실

1457년 단종이 노산군이 되어 청령포로 유뱃길을 떠나던해, 단종의 나이 이제 겨우 17살 이었다.

아이의 얼굴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앳된 모습의 어린 임금 단종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일 것이다.

   양 옆에 서있는 신하와 시종의 굳어진 표정에서는 청령포에서 귀양생활을 할 단종에 대한 염려와

안타까움을 읽을 수 있다.

단종 대왕영정

  곤룡포에 익선관을 쓰고 백마를 탄 단종에게 산머루를 바치는 충신 추익한 (秋益漢)의 모습,

운보 김기창 작

  (雲補 金基昶 作)

정순왕후와 단종의 금보

금보는 죽은 임금이나 왕비의 추상존호를 새긴 조장을 말한다

역사관을 잠시 둘러보고 나왔다

제실과 역사관을 담고 앞에 식당에서 점식을 해결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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