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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죽서루

며칠동안 티스토리가 먹통이 되어 글을 올릴 수도 없고 현재도 겨우 글 올리는 정도라서

그동안 포스팅해서 보관해 놓은 것 꺼내올 수도 없어 간단히 가을소식 전합니다

이번 강원도 여행중 마지막 여행지 삼척 죽서루와 이사부길의 단풍과 아름다운 동해바다입니다

죽서루

오십천 절벽 위에 자리한 죽서루(보물)는 우리나라 대표누각이다.

조선태종 3년(1403)에 삼척부사 김효손이 옛 터에 중창하였으며,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 십 차례에

걸쳐 중수되거나 단청되었으며 증축되었다. 죽서루는 그 하층이 17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9개는 자연석에 세웠으며, 8개는 석초(石礎)위에 건립하였다는 건축사적 특징 및 아름다움이

있으며, 그 상층에는 20개의 기둥에 팔작지붕이다.

관동제1루 죽서루

죽서루 주변에는 단풍이 이렇게 곱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죽서루에서 바라본 오십천 

대관령(大關嶺) 동쪽에 있는 관동지방(關東地方)에는 경치가 뛰어난 곳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곳으로 여덟 곳이 꼽힙니다.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와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과 월송정입니다.

이른바 관동팔경(關東八景)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관동팔경 가운데 유일하게 바다와 접하지 않고 내륙에 들어와 앉아 있고, 제일 큰 누각이며,

가장 오래된 건물이 있습니다. 죽서루(竹西樓)입니다.

누각에는 여러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제일계정'(第一溪亭)라 쓴 현판입니다. 글씨는 현종 3년(1662년)에 허목(許穆)이 썼고, '시냇가에 있는

정자 중 첫째가는 정자'라는 뜻입니다. 시원하고 유려한 글씨로, 68세 때 글씨입니다.

 

허목은 '미수전'(眉叟篆)으로 통하는, 독특한 전서체 글씨로 유명합니다. 그는 곳곳에 많은 현판 글씨를

남겼는데, 거의 모두가 전서체 글씨입니다. '제일계정'처럼 행초(行草: 행서와 초서를 섞어 쓴 글씨)

글씨로 남긴 현판은 이것 말고는 찾기 어렵습니다.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라고 쓴 현판입니다. 글씨는 헌종 3년(1837년)에 삼척부사 이규헌(李奎憲)이

썼고, '바다 신선이 노닐던 장소'라는 뜻입니다.

김충현의 현판글

죽서루

 

죽서루는 삼척 오십천(五十川)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죽서루 명칭과 관련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삼척에 황진이에 버금가는 기생이 있었습니다. 정조가 대나무와 같고 자태는 선녀와 같아서

'죽죽선녀'(竹竹仙女)로 불렀는데, 죽죽선녀 집 서쪽에 있는 누각이라고 해서 죽서루로 불렀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누각의 동쪽에 대나무숲이 있었고, 그 대나무 숲속에 '죽장사'(竹藏寺)란 절이

있었다는 이유로 죽서루로 불렀다고도 합니다.

암각화

 성혈

 

용문바위 위에 모두 10개의 성혈(性穴)이 있습니다.

 

성혈은 선사 시대에 풍요, 생산, 다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원시신앙의 형태로 발전하여 조선 시대에는

칠월칠석날 자정에 아녀자들이 성혈터에 찾아가서 일곱 구멍에 좁쌀을 담아놓고 치성을 드린 다음

그 좁쌀을 한지에 싸서 치마폭에 감추어 가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었습니다.

용문바위

 

용문바위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이 죽어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어 동해를 지키다가 어느 날 삼척의 오십천에

뛰어들어 죽서루 절벽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용이 오십천을 뛰어들 때 죽서루 옆 바위를

뚫고 지나갔는데, 바로 용문바위라고 합니다.

남쪽과는 달리 이곳은 벌써 이렇게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다

오죽 

죽서루의 단풍과 암각화 용문바위등을 돌아보고 밖으로 나와 해안가 이사부길을 잠시 걸어봅니다

또 어디가 문제가 발생했는지 소방헬기가 지나간다

 동해바다 조망, 삼척 새천년해안도로 이사부길과 비치조각공원

삼척 해안 따라 이어지는 새천년해안도로, 이사부길을 따라가다가 비치조각공원에서

잠시 머물러 검푸른 동해바다의 풍경을 보며 쉬어간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에메랄드빛 바다를 바라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다.

이사부

 이사부는 내물왕의 4대손으로 거칠부와 함께 진흥왕을 도와 영토 확장에 큰 공을 세웠다.
512년에 지금의 강릉인 하슬라주의 군주로 있을 때 지금의 울릉도인 우산국을 정벌할 것을 계획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이 어리석고 사나워서 위세로 항복받기는 어렵고 계교를 써서 복속시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무로 사자를 많이 만들어 전투용 배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 해안에 가서 거짓말로

말하기를 "너희들이 만일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를 놓아 밟아 죽이게 하겠다"고 했는데, 그들이 두려워

곧 항복했다고 한다. 545년에는 왕에게 국사를 편찬할 것을 제의해 <국사>가 편찬되었다.

 

단양적성비에 의하면, 이사부는 549년을 전후하여 한강 상류지방을 공격해 신라 영토를 크게 넓혔다.

또한 562년 반란을 일으킨 가야를 공격해 대가야를 멸망시켜 신라는 낙동강하류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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