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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구

청도읍성

청도 지인 집에 초청을 받아 가면서 청도 읍성을 한 바퀴 돌아보고 가기로 한다(11/6)

청도읍성은 청도의 진산(鎭山)인 남산[829m]에서 청도천으로 뻗은 두 줄기의 능선 사이에

남고북저(南高北低),동고서저(東高西低)한 해발 100∼122m의 구릉지와 일부 평탄지에

축조된 전형적인 평산 성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전방으로는 비슬산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청도천과 양안으로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평면 형태는동서 간 직선거리 약 930m, 남북 간 직선거리 약 870m로 장방형이다.
[출처] 한국학 중앙연구원 - 향토문화 전자대전

고마청

조선시대 민간에게서 징발한 말을 관리하는 관청

1920년경 일제가 성내 신작로를 개설한다는 명목으로 성문과 성벽을 헐었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화강지

축조 시에 성돌을 제방 축조에 사용했다고 한다. 이로써 본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2005년 정밀 지표 조사 및 복수[복원] 정비 계획안 수립을 거쳐 2006년부터 연차적으로 동문지,

북쪽 성벽 일부 및 북문지 등의 발굴 조사를 거쳐 복원 정비되었다. 2010년에 북쪽 성벽 치성과 성내지,

남문지 등의 발굴 조사를 하고, 북쪽 성벽 일부 구간을 복원 정비 중에 있다.

[출처] 한국학 중앙연구원 - 향토문화 전자대전

청도읍성은 조선 초기에 이미 석성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 기록상으로는 1589년(선조 22)에

학봉(鶴峰)김성일(金誠一)이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와서 정세의 위급함을 조정에 알리자 동래에서

서울에 이르는 대로변에접한 주군(州郡)의 성지(城池)를 수축하라는 왕명에 따라 1590년(선조 23)에

군수 이은휘(李殷輝)가 2년에 걸쳐 개축했다.

성문 앞에 U자형으로 방어성을 하나 더 쌓아 놓았습니다
이것은 성문을 직접 공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성문 바깥에는

연꽃 저수지 밭이 있어서 보기도 좋을뿐더러 침입자를 방어하는데도 역할을

크게 한다고 함

북문

청심정

2012년 현재 동쪽 성벽 일부만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1995년 1월 14일]로 지정되어 보존·관리되고 있다.

그 외 성벽 구간은 민가 및 경작지 등으로 인해 대부분 훼손되어 간헐적으로 성벽이 남아 있다. 2009년부터

 매년 청도읍성 동문에서 북문까지 복원되어 244m 구간에서 한 줄로 청도읍성 밟기를 진행하고 있다.

 

성 안팎으로는 당시 지방 행정 시설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청도 석빙고[보물 제323호],

 청도 동헌[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403호], 도주관[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207호],

 청도 향교[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207호], 청도 척화비[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109호] 등

 당시 지방 행정 및 지역사 관련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학술 조사 결과, 청도읍성은 성벽·치성·적대·

문지 등이 확인되었다.
[출처] 한국학 중앙연구원 - 향토문화 전자대전

해걸음 카페

아직 영업은 하지 않고 남자분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카페 뜰에는 장미도 보이고

국화도 보이고

인동덩굴도 보인다

청화 쑥부쟁이

이곳은 민속 식당과 주점을 운영하고 있다

서문

 

그러나 임진왜란 때 병화로 건물이 소실되었다. 그 뒤 1669년(현종 9)에 군수 유비(兪秘)가 서문인 무회루를

건립했고, 동문인 봉 일루는 1708년(숙종 34)에 군수 임정(林淨)이 건립했다. 한편 1870년에 군수 김이교(金履橋)가

남문인 진남루를 건립함으로써 4 성문을 갖추게 되었다. 당시 청도읍성의 규모는 둘레 1,880m [1,570보],

 높이 1.7m [5척 5촌], 성첩 600첩이라 기록되어 있다.

도주관(객사)

도주관 뒤에는 새로운 건물이 생겼는데 아마 체험관이 아닐까?

화양초등학교

오른쪽에 동헌이 보인다

동헌의 모습

은행잎은 다 떨어지고

청도향교

위에서 바라본 석빙고

양쪽 벽을 이어주던 반원 아치 형태의 홍예(虹霓)가 4군데 남아있을 뿐 천장은 완전히 무너져

불완전한 상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우리나라 석빙고 가운데 경주석빙고(보물 제66호) 다음으로

큰 규모이고 쌓은연대도 오래된 것이다.

얼음을 넣어두는 석실 지붕을 아치형으로 했는데 조금 위험해 보인다

동·서로 뻗은 긴 구조로, 서쪽에 문을 두었으며 계단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경사진 바닥이 보인다.

가운데에는 물이 빠지는 길을 두고 동쪽에 구멍을 만들어, 석빙고 밖의 작은 개울로 물이 빠지도록 하였다.

환기 구멍을 뚫어 놓았던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는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다.

석빙고에 대한 내용이 쓰여있는 비석

석빙고의 입구 왼쪽에는 석비(石碑)가 서 있는데, 앞면에는 공사에 동원된 인원수·쓰인 자료·비용 등을

기록해 놓았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날짜와 함께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그중에 ‘계사(癸巳)년’

이라는 기록이 있어 조선 숙종 39년(1713)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앞에는 찻집이고 뒤로는 청향 정사(淸香精舍)라는 편액이 걸린 기와집이 보인다.

지인 집에 도착 감 고르기와 모과 고르기를 도와주었다

옆집에 있는 엄나무인데 우리나라에서 몇째 안 되는 오래된 나무가 아닐까?

하수오

 

이 집은 예전에 감도 따주고 주인장 취직도 시켜준 인연으로 자주 오갔는데 몇 년 동안 바삐 살다 보니

소원해졌는데 이번에 연락을 하게 되어 방문을 하게 됐고  감도 한 박스 모과도 한 박스 그리고 햅쌀도

20kg 어찌나 고맙게 하던지 그 유명한 청도 추어탕을  같이 하고 헤어져 운문사에 들리려고 했으나

입구 2km는 정체한 것 같아서 얼음골로 빠지지도 못해 차를 돌려 먼길로 돌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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