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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광주.제주

무등산 증심사

바람재까지의 산행을 마치고 증심사로 왔다

무등산 증심사 일주문

비석 군의 갓 위에 또 하나의 눈갓을 쓰고 있는 비석과 부도탑

사천왕문

북방다문천왕.남방 증장천왕

 

 북방 다문천왕

수미산의 북방(북구로주)을 수호하고 재복부귀를 맡고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고

설법을 많이 들으며 불법을 옹호하는 천왕

 

 남방 증장천왕

수미산의 남방(남섬부주)을 수호하고 항상 염부제 중생을 관찰하고 더욱 길고

넓게 중생의 이익을 증장시켜 주는 천왕

동방지국천왕. 서방 광목천왕

 

동방 지국천왕

수미산의 동방(동승신주)을 수호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며 나라를 잘 다스리고 지키는 천왕

 

 서방 광목천왕

수미산의 서방(서구야니주)을 수호하고 위엄으로 나쁜것을 물리치고 넓고

큰 눈으로 바르게 지키고 중생을 이익되게 해주는 천왕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860년(헌안왕 4) 철감선사(澈鑑禪師)가 창건하였고, 1094년(선종 11) 혜조국사(慧照國師)가 중수하였으며,

1443년(세종 25) 전라도 관찰사 김방(金倣)이 자신의 녹봉으로 중창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1609년(광해군 1) 석경(釋經)·수장(修裝)·도광(道光) 등의 선사들이 중창하였고,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임제종(臨濟宗) 운동의 본부가 되었다. 그 뒤에도 중수를 거듭하다가 1951년 4월 50여

명의 무장공비들에 의하여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버렸으며, 1971년에 크게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89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오백전(五百殿)과 대웅전·지장전(地藏殿)·비로전

(毘盧殿)·적묵당(寂默堂)·종각·일주문·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오백 전을 제외한 건물들은 최근에 지어진 것이다.

오백 전은 대웅전 뒤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조선 초기에 지어진 강진 무위사(無爲寺)의

극락전과 같은 계통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전내의 오백나한상은 1443년의 중창 때 김발이 조성한 것이라고

전해 오는데,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불상이다.

문화재로는 증심사 창건 때 만들었다는 1972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삼층석탑,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1933년의 보수 때 탑내에서 금동석가여래입상과 금동보살 입상 등이 나왔던 오 층 석탑, 조선 중기의

것으로 보이는 칠층석탑 등이 있다. 특히, 오 층 석탑에서 발견된 금동석가여래입상과 석조보살입상은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분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겹처마에 팔작지붕이고 공포는 외삼출목, 내오출목의 다포식 건물로 1971년에

중건하였다. 어칸은 솟을빗살창이 달린 4 분합문이다. 협칸과 퇴칸은 2 분합문에 나뭇잎 모양의 빗살문이다.

 불단 위에는 삼존상을 봉안하였는데,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협시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다. 일반적으로 석가삼존상이면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봉안하는 것이

상례인데, 증심사 대웅전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였다. 삼존불 뒤에는 불모(佛母)인

석정(石鼎) 스님이 그린 석가모니후불탱을 봉안하였고, 본존불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칠성탱을,

오른쪽 벽에는 신중탱을 모셨다.

불공을 드리는 분이 있어 밖에서 줌인해 담았는데 오른쪽 보살은 나오지 않았네

적묵당 

수도정진하는 곳

범종각

행원당

지장전은 대웅전 왼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건물양식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면의 중앙에는 ‘지장전(地藏殿)’ 편액을, 왼쪽 협칸의 문위에는 ‘회심당(繪心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내부 불단에는 지장보살과 도명존자ㆍ무독귀왕ㆍ판관ㆍ녹사ㆍ동자 등을 봉안하였다.

비로전 정면 3칸, 측면 3칸, 맞배지붕에 주심포식 건물이다. 건물의 정면에는 권창윤(權昌倫)이

쓴 ‘비로전(毘盧殿)’ 편액을 걸었다. 내부 불단 위에는 보물 제131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주존으로

봉안하였으며, 그 뒤에 비로자나후불탱을 봉안하였다.철조 비로자나불좌상은 보물 제131호로 지정되어 있다.

 광배(光背)와 좌대(座臺)는 잃어버리고 없지만 불상 자체는 완전한 편이다. 상호는 원만한 타원형이며 머리는

나발(螺髮)에 육계(肉髻)가 솟아 있다. 가늘게 뜬 눈과 우뚝한 코, 굳게 다문 입술 등은 다소 근엄한 표정이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고 두 귀는 짧은 편이다

철조 비로자나불좌상

비로전에는 높이 205㎝의 석불 1구가 있는데, 고려시대(10세기경)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조보살입상으로

1989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비로전 안에 안치된 높이 90㎝ 정도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철불은 본래 광산군 서방면 동계리에 있던 것을

1934년에 옮겨온 것이다.

칠층석탑 오 층 석탑과 나란히 서 있는 탑신에 ‘옴마니 반메훔’이라는 범자(梵字)가 새겨져 있어 범자 7층석탑

(梵字七層石塔)이라고도 한다. 하나의 돌로 된 방형의 지대석 위에 탑신을 올려놓아 기단부가 생략되었다.

탑신에는 귀기둥을 표현하고 초층 탑신의 면에는 꽃무늬를 새겼으며, 2층부터 7층까지는 범자(梵字)를

양각하였다. 옥개석은 아랫면에 통상적으로 조각하는 옥개받침을 생략하고 윗면의 물매가 완만하여 매우

납작하다. 각 층의 네 면마다 관세음보살 육자대명왕진언(觀世音菩薩 六字大明王眞言)인 ‘옴마니 반메훔’

이라는 동일한 범자를 7층에서 아래로 한 자씩 새겼다. 일반적인 석탑양식에서 벗어나는 어색한 점이 있으나,

탑신 각 면에 범자를 새겨 희귀한 예를 보여주고 있다. 조성연대는 조선중기로 추정된다.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시대를 달리하는 통일신라시대의 삼층석탑과 고려시대의 오 층 석탑과 조선시대의 칠 층 석탑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산신각이 좀 특이하다

염화미소. 보현보살. 도솔래의상. 비람강생상

 

염화미소

 석가모니가 영산회상에서 연꽃을 들어 보이자 팔만대중 중에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 지은 것.

 

보현보살

문수보살에 비해 석가모니불을 오른편에서 협시해 부처의 행원을 대변하는 보살.

 

바람강생상

룸비니아 동산에서 마야부인의 몸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을 일컫는 것이다

바람이란 룸비니를 뜻한다

 

도솔래의상

석가모니부처님은 본래 도솔천에서 호명보살로 계시다가 적당한 때가 되자 이 세상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오셨다는 것을 말함

 나라연금강

사찰이나 불전의 문 또는 불상 등을 지키는 불교의 수호신. 인왕역사

밀적금강

 사찰이나 불전의 문 또는 불상 등을 지키는 불교의 수호신. 인왕역사

유성출가상. 설산수도상. 수하향마산. 사문유관상

 

유성출가상

한밤중에 카필라밧투성을 떠나 출가수행자가 되신 것을 이야기한다

 

설산수도상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시다

 

사문유관상

태자 시절에 상문 밖으로 유람 나갔다가 생 노 병 사의 괴로움을 깨닫고 출가를 결심하게 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수하향마상

보리수 아래에서 깊은 명상 끝에 드디어 우주와 인생의 최고 진리를 깨 닫고 부처님이 되신 것을 말함

쌍림열반상. 부처님 몸에서 나온 사리를 나누는 모습. 문수보살. 녹원전법상

쌍림열반상

쿠시나라의 두 그루 사라나무 아래에서 입명 즉 열반에 드신 것을 말함

녹원전법상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를 상대로 최초의 설법을 하신 것을 말함

문수보살

석가여래를 왼편에서 모시고 있는, 지혜를 맡아보는 보살

대웅전에 용 4마리가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

취백루와 종무소

취백루는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소실됐다 광해군 원년(1609년)에

중창되고 한국전쟁 중 화마로 다시 전소됐다가 영조 스님이 주지로 있던 1988년 중창되는 등의 부침이 있었다.

1988년 2층 건물로 지어진 취백루는 시민들의 휴식과 문화 공간, 템플스테이 체험, 불교행사, 종무소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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