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비금도와 도초도를 돌아보고 바로 여기 유달산 케이블카 북항 스테이션으로 왔다
목포해상케이블카’는 슬로우시티 목포의 옛 중심지인 목포 원도심과 북항, 유달산은 물론 고하도를
비롯한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해양관광, 레저, 문화관광의 새로운 중심축이다.
유달산의 지형적 특성과 우수한 경관을 고려하여 원도심과 다도해상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국내 최장 3.23km,
국내 최고높이155m를 자랑한다. 캐빈대수 일반 40대, 크리스털 15대 총 55대 운행 중
총 3,234m(해상 820m, 육상 2,414m)
목포 신시가지와 멀리 압해도와 압해대교가 보인다
목포 구시가지와 오른쪽에 영산강 하구언도 보이네
줌인해본 영산강하구언
유달산
유달산은 예부터 영혼이 거쳐가는 곳이라 하여 영달산이라 불렸다.
동쪽에서 해가 떠오를 때 그 햇빛을 받아 봉우리가 마치 쇠가 녹아내리는 듯한 색으로 변한다 하여
유달산(鍮達山)이라 하였다.
이후 구한말 대학자인 무정정만조가 유배되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유달산에서 시회를 열자 자극을 받은
지방 선비들이 유달정(儒達亭) 건립을 논의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산 이름도 유달산(儒達山)이 되었다.
목포대교
고하도 이충무공 유적
이순신 장군이 군량미를 비축하며 전쟁을 대비하던 곳, 고하도이충무공유적 고하도 이충무공유적지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정유재란 때인 조선 선조 30년(1597) 10월에서 다음 해 3월까지 머물면서 군량미
및 군수물자를 모아 전쟁에 대비하던 곳이다. 장군은 이곳에 돌로 남·서 길이 1㎞, 높이 2m, 폭 1m의
성을 쌓아 적의 배를 구별하고,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오가는 배들에게 1∼3석의 식량을 내어 놓고
통행첩을 받아가도록 하여 열흘 만에 일만 석의 군량미를 비축하였다. 또한 이곳에서 무기와 배를 만들며
전열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 고하도 * 고하도는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2km 정도 떨어진 작은 섬이다.
섬의 명칭은 《동국여지승람》에서 볼 수 있고, 《난중일기》에는 보화도라고 하였으며, 고하도
이충무공기념비에는 고화도로 표기되어 있다.
고하도 전망대
전망대 안에는 이순신장군과 판옥선 제작과정이 전시되어있다
박화성
본명은 경순, 호는 소영.
1915년 목포에 있는 정명여학교 고등과를 거쳐 1918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마쳤다.
천안공립보통학교·아산공립보통학교 교원으로 있다가 영광중학교 교사를 지냈다.
1926년 숙명여고보 신학년제(4년제)를 졸업하고 일본에 가서 1929년 일본여자대학 영문학부를
수료했다. 1961년 한국문인협회 이사, 1963년 국제 팬클럽 한국본부 중앙위원,
1965년 한국여류문학인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1924년 〈학생계〉에 시 〈백합화〉를 발표하고, 이듬해이광수의 추천을 받아 〈조선문단〉
에 단편 〈추석전야〉가 발표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 뒤 잠시 작품활동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광수의 추천으로 〈하수도공사〉(동광, 1932. 5)·〈백화〉(동아일보, 1932. 6. 8~11. 22)
등을 발표하면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다.
김우진
호는 초성(焦星)·수산(水山). 1920년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연극인. 우리나라 최초로 연극에
있어서 표현주의극이 가장 알맞은 창작방법이라고 내세웠다
장성군수였던 성규(星圭)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7세 때 어머니를 잃고 복잡한 가정 속에서
고독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를 남달리 사랑한 아버지는 엄격한 유가적 법도에 따라 가르쳤다.
목포공립심상소학교 고등과 1년을 마친 뒤, 1915년 일본으로 건너가 가업을 이어받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구마모토[龍本] 농업학교에 입학했다.
이듬해 잠시 귀국해 정점효와 혼인했다. 일찍이 16세 때부터 단편〈공상문학〉을
썼던 그는 문학에의 꿈을 꺾을 수 없어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1919년 와세다대학 영문과에
들어가 희곡을 전공했다.
1921년 '동우회순회연극단'을 만들어 국내에서 40여 일 동안 문화계몽운동을 벌였으며, 이때 총독부
관비유학생으로 우에 노 [上野] 음악학원에서 성악을 공부하던 윤심덕을 만났다.
대학 졸업 후 가업을 이어 상성합명회사 사장이 되었으나, 아버지와 잦은 마찰을 일으켰다.
1926년 마침내 가출, 일본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고 돌아오던 중 윤심덕과 함께 현해탄에서
투신자살했다. 그의 나이 29세 때였다.
차범석
전통적 개성이 뚜렷한 사실주의극을 썼으며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민족분단을 객관적으로 그려냈다.
1966년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61년 문화방송(MBC) 연예과장을 거쳐 1963~83년 극단 산하
대표로 있었다. 1973~77년 한국예술문화단체 총 연합회(예총) 부회장, 1974년 국제 팬클럽 한국본부 이사,
1975년 극작가협회 회장, 1982~86년 방송광고심의회 회장, 1989년 중앙국립극장 운영위원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1993년 서울예술전문대학 교수, 1999년 경희대학교 정보문화원 객원교수,
2002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2004년 광화문 문화포럼 회장 등을 지냈다.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에서 일본수군을 격파한 수군통제사 이순신은 해남의 전라우수영에서
고민했다. 적군은 아직 많은 수의 전함을 보유하고 있는데 적군의 주력 부대가 다시 명량해협으로
진입하고 별동부대가진도 남단으로 우회하여 접근한다면 명량해협에 인접해 있는 전라우수영은
앞뒤에서 적의 공격을 받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조선수군은 임시로 진을 펼쳤던 안창도로부터 10월 29일 이곳 목포 앞바다 고하도로
수군 본영을 옮겨 주둔하면서 군량미를 비축하고 군수물자를 모아 전력을 재정비했다.
고하도 전망대와 고하도 해변산책로
고하도는 목포시내에서 남서쪽으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영산강 어귀에 있는 작은 섬이다.
섬의 북쪽 언덕은 바다 건너 유달산과 마주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영산강 하구둑을 마주하고 있다.
지금은 시내 서쪽 방면에서는 목포대교가 북항 선착장과 고하도를 연결해주고 있다.
고하도는 서남해에서 내륙으로 연결되는 영산강의 빗장 역할을 하는 지리적 특성이 있어서 이를 아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이곳을 전략지로 활용하여 일본군의 침입을 막아냈다.
작은 섬이지만 이곳을 잃으면 호남의 곡창지대를 흐르는 영산강을 일본군에게 내어줄 수도 있는
곳이기에 전략상 중요한 곳이었다.
목포대교
2012년에 완공된 목포대교는 총연장 4.129m 너비 35~50m의 왕복 4차선 도로로 목포 북항과 고하도를 잇는
해상교량으로 비상하는 학의 날재처럼 아름다운 모습과 일몰이 함께 어우러져 장관을 자아내고 있다.
목포대교는 목포시에 있는 국도 제1호선의 자동차 전용도로 교량으로, 죽교동과 유달동은 육지 측에 있으며
고하도, 허사도를 연결하며 목포 신외항과 서해안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목포의 관문으로 주탑과 케이블의
모양은 목포의 시조인 학 두 마리가 목포 앞바다를 날아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환 것이다.
현대 삼호중공업
HD현대 계열 조선사로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에 본사 및 본공장이 소재하고 있고,
인근 대불공단에 사외 공장 등을 보유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의 자회사다.
목포신항
목포신항(木浦新港)은 대한민국 목포시 유달동 허사도에 있는 목포의 신항이다.
목포의 옛 항인 목포항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었다.
총 배후부지면적은 60만m²이고 현재 5만 톤급의 3 선석이 있고 안벽길이는 750m이다.
목포 앞바다 신안군의 여러 섬들 저 멀리 천사대교도 흐미하게 보인다
고하도의 용머리 부분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목포해양대학교와 실습선도 보인다
유달산
높이 228m. 산정이 가파르고 기암절벽이 첩첩이 쌓여 있어 호남의 개골산으로도 불린다.
산의 동쪽과 남쪽의 완경사 산록은 이미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산정에서는 목포시와 다도해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과거 외적을 경계하던 봉수대가 2개 남아 있다.
약 100m 내려오면 정오를 알리던 오포대와 노적봉이 있다.
노적봉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군량미를 쌓아둔 것처럼 가장해 적을 속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산기슭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조성된 조각공원이 있으며, 그 옆쪽으로는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난공원이
있어 유달산의 운치를 더해준다.
그밖에 대학루·관운각·소요정·유선각·달성각과 유달사·수도사·관음사 등의 사찰이 있다.
좌측 이등바위 우측 일등바위 아래에 신안비치호텔이 보인다
영산강 하구둑
영산강 하구둑(榮山江河口둑, 영어: Yeongsan River Estuary Bank)은 전라남도 목포시 옥암동과 영암군
삼호읍 나불리 사이의 영산강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하구둑이다.
길이는 4,351m이며, 평균 높이는 20m이고, 너비 30m, 높이 13.6m, 두께 3.6m, 무게 480t의 철제 배수갑문이
8개 설치되어 있다.
바위들은 풍화작용과 해식작용으로 형성된 풍화혈로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용의 비상
풍수지리적으로 지형이 용을 닮아서 용섬이라 불리기도 하는 고하도 목포의 희망을 담아 하늘에 오르다
으아리꽃도 보이고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바위형상
고하도 해양동굴
일제말엽 군사 작전용으로 조성한 인공동굴로 현재 총 14개소의 위치가 확인되었고
그중 11개소는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다
일본 해군의 특공정을 감출 수 있는 위장 시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고 규모는 폭 5m 높이 3m 내외고
길이는 동굴마다 차이가 있어 가장 긴 곳이 18m 짧은 곳이 6.8m 정도이다
고하도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데크 길
자귀나무도 보이고
작년에는 유달산 스테이션에 내려 유달산도 둘러보았는데 친구가 덥다고
싫다고 해서 바로 북항스테이션으로 직행을 했다
기생초
톱풀
가우라 (바늘꽃)
Only Love - Andre Ri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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