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회 회원께서 트레킹 제의가 와서 범어사 역에서 만나 추모공원을 거쳐 상현마을로 해서
신천마을로 돌아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상현마을로 통하는 둑방길 편백나무 터널 우선 그늘이 생기고 시원해서 좋다
회동수원지
회동수원지는 1930년대 말,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조성한 인공저수지다.
경상남도 양산시 원효산 남쪽 계곡에서 발원한 수영강이 철마천과 만나는 부산시 금정구 오륜동과
회동동에 걸쳐 있다.
1964년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던 회동수원지 일대는 45년 만인 지난 2010년 일반에 개방됐다.
지금 현재는 장맛비로 만수위가 된 상태다
회동 수원지는 집수 면적 93.28㎢, 만수 면적 2,117㎢, 총 저수량 1,850만 7천 톤, 유효 저수량
1,515만 3천 톤이다.
호수 둘레는 약 20㎞, 긴 쪽의 지름은 약 6㎞, 폭 2㎞의 인공 저수지이다.
취수구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회동동 산 13-1번지에 위치하며, 취수구의 수문은 각각 해발 27m·
29m·32m·34m에 자리한 4개소가 있다.
저수지의 수위는 최고 수위 35.8m, 최저 수위 25.2m이며, 주변 93.02㎢는 상수원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회동수원지를 거쳐 강릉김 씨 사당 상현당 쪽으로 이동을 한다
상현마을에서 상현당으로 오는데 조경이 아주 잘된 아담한 집이 눈길을 끈다
조경의 견본주택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것 같다
조선 시대에 충순 위(忠順衛) 김일신(金日新)의 아들 김검(金儉)이 동래로 남하하여 강릉 김 씨
충순공파를 연 이후, 북계(北溪) 김선(金璿) 때 동래 선동(仙洞)으로 이주하여 터전을 잡아 번창하였다.
이후 동래[수내, 여고, 산저] 및 기장 등에 세거 하다가 지금까지 부산광역시 일원에 대대로 거주하고
있는 성씨이다.
사진은 문이 잠겨 있어 옛날 사진으로 대체 아래 3장도 이하동문
강릉 김 씨는 부산에 두 개의 파가 들어왔다. 먼저 한림공파로, 파조(派祖) 김일신은 시조 명주군왕
김주원의 22 세손이며, 한림공(翰林公) 김영견(金英堅) 파조의 18 세손이다. 동래의 강릉 김 씨는
북반 중(北泮中)[현 명륜동] 김일성(金日省)과 김일신 형제에서 비롯되었다. 김주원의 16 세손
호부 시랑(戶部侍郞) 김웅(金雄)의 현손이자, 낭장(郎將) 김원간(金元侃)의 둘째 아들이었던 김일신
(金日新)은 충순 위를 지냈다. 김시습의 종제(從弟)이며, 김일신의 아들인 김겸이 생육신 사건으로
동래 수내동으로 내려와 숨어 산 이후 동래, 기장, 여고, 산저 등에 세거하면서 충순공 동래 파라 하였다.
이후 이들은 사는 지역에 따라 다시 분파하였다.
강릉 김 씨는 부산에 두 개의 파가 들어왔다. 먼저 한림공파로, 파조(派祖) 김일신은 시조 명주군왕
김주원의 22 세손이며, 한림공(翰林公) 김영견(金英堅) 파조의 18 세손이다.
동래의 강릉 김 씨는 북반 중(北泮中)[현 명륜동] 김일성(金日省)과 김일신 형제에서 비롯되었다.
김주원의 16 세손 호부 시랑(戶部侍郞) 김웅(金雄)의 현손이자, 낭장(郎將) 김원간(金元侃)의
둘째 아들이었던 김일신(金日新)은 충순 위를 지냈다.
김시습의 종제(從弟)이며, 김일신의 아들인 김겸이 생육신 사건으로
동래 수내동으로 내려와 숨어 산 이후 동래, 기장, 여고, 산저 등에 세거하면서 충순공 동래 파라 하였다.
이후 이들은 사는 지역에 따라 다시 분파하였다.
먼저 강릉 김 씨는 김검의 아들 김선(金璿) 때 동래 선동에 자리를 잡았다.
이때부터 강릉 김 씨 충순공 동래파의 선동 문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세거 기반을 확고하게 하였다.
이들을 충순공 동래 수내 파라 한다.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 선동에서 충순공의 손자인 김선은 북계 처사(北溪處士)를 호로 삼고, 단종의 폐위
(廢位) 후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서 세상을 등지고 동래에 거주하였다.
북계 김선은 매월당 김시습의 종질(從姪)이자 참봉(參奉) 금검의 아들이다. 김선은 이조 참의(吏曹參議)로
있으면서 언사(言事)가 왕의 뜻과 맞지 아니하여 울주 부사(蔚州府使)에 나갔다가 돌아왔는데,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아우 김랑(金琅)과 은둔할 곳으로 동래 북쪽 상현리(上賢里)에 이르러
세거 하게 되었다.
뒷날 단종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통곡하고, 선동 시냇가에 정자를 지어 북으로 문을 내어 절하며
스스로 호를 북계(北溪)라고 하였다고 한다.
조선 시대 동래부의 북면에 거주하며 번창했던 강릉 김 씨는 현재의 금정구 선동에 60여 년 전까지
10여 호가 살았으나, 지금은 한 집도 살지 않고 문중의 재실(齋室)만 남아 있다.
그리고 중구 남산동과 금정구 노포동에 각각 3호 정도가 살고 있을 뿐이다. 부산 지역에 살고 있는
강릉 김 씨는 2000년도 기준으로 2,032호에 6,717명[남 3,335명, 여 3,382명]이다.
상현 정사(上贒精舍)를 1907년(순종 1)에 세웠으며, 상현단(上贒壇)을 1924년에 경상도 유림의 발의로
세워 김선과 김정서를 모시고 제사 지냈다. 화수정(花樹亭)을 1946년에 세웠다.
2000년대에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진행하여 상현당(上贒堂)으로 정비하였다.
유림들이 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동 상현 마을[현 선동 재실]의 상현 정사에서 매년 음력 4월 첫 정일
(丁日) 에제사 지낸다.
선영은 동래 북쪽 상현리[선동 재실 뒤편] 언덕에 모셔져 있다. 특히 김정서는 임진왜란 때의
동래부 66 공신 중에서도 별전(別典) 24 공신의 으뜸으로 동래 충렬사에 배향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강릉 김 씨의 인물로는 고려 왕조에서는 학문과 문장이 뛰어난 문하시중 김인존(金仁存),
평장사 김영석(金永錫) 등이다.
조선 왕조에서도 많은 인물이 배출되어 활동하였는데, 조선 초기의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 유명하다.
선동 신천마을 쪽으로 오는데 상류 쪽의 바위군이 물과 함께 눈길을 끈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죽단화가 피었단 말인가 착각은 자유라지만
아직도 봄인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듯
마을 곳곳에 보이는 참나리 곱기도 하다
서동 신천마을은 주위에 의리의리한 집들도 많지만 오래전부터 터전을 이루고 살고 있는
옛집들도 많다 담벼락에는 이러한 벽화도 볼 수 있는 소박한 건물들도 공존을 하고 있다
오늘은 날씨가 무척 더운 날 계획은 회동수원지 길을 걸어 본동으로 가려했으나
무리일 것 같아서 미리 상현마을에서 원점회귀 했는데 그래도 12 천보를 걸었다
내 목표량의 거의 배를 걸었다
이자연 - 구름같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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