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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모전탑
분황사 창건 당시에 세워졌으며 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 석탑이다.
원래는 9층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3층뿐이다.
단층의 기단은 자연석으로 높게 쌓았으며, 그 위에 화강암으로 받침을 마련하고 탑신을 쌓았다.
1층 탑신 4면에는 각각 감 실을 만들고 문짝을 달았는데, 감실 안에는 불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 좌우에는 화강암으로 조각하여 끼운 인왕상이 있는데, 매우 동적이며 근육의 표현에도 양감이
강조되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기단의 네 귀퉁이에는 석사자상이 배치되어 있다.
옥개부는 전탑 특유의 구조인 상하에 층단이 있다. 1915년 수리 때 2층과 3층 사이의 석함 속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은제사리합, 구슬류 등이 수습되었다.
이곳에도 코스모스는 이제 피고 있는 중이다
식재면적은 넓은데 아직은 이런 모습인데 다음 달 10일 경이나 돼야 활짝 필 듯하다
황룡사지 당간지주
많은 억새밭은 아니지만 보기 좋은 모스으로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왕고들빼기
박주가리열매
박주가리는 꽃에 비해서 열매는 무척 크게 열린다
황룡사는 삼국 시대 신라의 도읍인 경주에 있던 절로, 신라 진흥왕 때인 553년에 월성(月城) 동쪽에 궁궐을
짓다가 황룡이 나타났다고 하여 그 자리에 궁궐 대신 절을 세우고 붙인 이름이다.
절을 짓는 공사를 시작한 지 무려 17년 만에 완성하였다고 하며, 신라를 대표하는 절로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를 자랑했다고 한다. 특히 절 안에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탑인 황룡사 9층 목탑이 있었다고
하는데, 황룡사 9층 목탑은 높이가 무려 80여 미터에 이르렀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황룡사와 황룡사 9층 목탑은 고려 시대인 13세기에 몽골의 침략으로 불에 타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황룡사 터만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황룡사지는 분황사 바로 근처에 있는데, 현재는 곳곳에 초석들만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초석들만 살펴보아도 황룡사의 전체적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데, 사찰 전체의 넓이만 해도
약 2만 평에 이를 정도이다.
이 밖에도 황룡사 터에서는 금동불입상, 금동귀걸이, 유리 등 4만여 점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고,
높이가 182센티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치미(건물의 용마루 양쪽 끝에 높게 다는 장식기와)도 발견되어
절 안의 지어진 건물이 얼마나 크고 웅장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황룡사가 있던 자리인 황룡사지는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있으며, 사적 제6호에 지정되었다.
익모초
꿀풀과에 속하는 이 년생 초. 아시아가 원산지이고, 들에 서식한다. 크기는 약 1m이다.
줄기가 네모나고 하얀색 털이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꽃말은 ‘이로움’, ‘유익’,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이다.
한방과 민간에서는 이 풀을 말려 대하증, 자궁 출혈, 출산 전후의 질병 등 거의 모든 부인병에 약재로 쓴다.
슬픈계절에 만나요/백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