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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구

안동 도산서원

 

어느 곳이나 민들레가 많지만 농약 같은 것에 오염되지 않은 곳이 있다고 하여 지인도 

만나볼 겸 안동으로 출발을 한다

지인을 만나 산길을 돌고 돌아 마지막 길이 끈기는 곳에 대추나무 과수원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그곳이다

옆지기와 둘이서 캐고 지인은 다듬고 그렇게 한 시간 반정도 민들레를 캐고 잡어 매운탕으로 

점심도 먹고 도산서원에 매화를 보기 위해서 이곳 도산서원에 왔다 (3/23)

만수위가 된 안동호 멀리 시사단도 보인다

시사단(試士壇)

정조는 이황의 학덕을 기리는 뜻에서 1792년 특별 과거시험 ‘도산별과’를 이곳에서 시행하였으며,

시사단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각이다.

당시 응시자가 7,0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1975년 안동댐 건설로 인해 원래 위치에서 10m 높이의 돌 축대 위에 옮기게 됐다.

위 모습과 아래의 모습을 보면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2015년에 왔을  안동호에 물이 없을 때의 모습 

퇴계가 걸었다는 언덕에는 이제 매화가 피고 있다 

댐으로 고립된 마을은 여객선으로 하루에 몇 번씩 왕래를 할 수가 있다고 한다

도산서원 전경

예부터 안동에는 서원이 많았다.

조선 시대 전국에 서원이 650개 정도였는데, 안동 지역에 48개(사액서원 8개, 비사액 서원 40개)나 있었다.

조선 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전국 47개 서원만 남기고 모두 훼철되었는데, 안동의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서애 류성룡 배향)은 남았다.

도산서원은 선조 때 사액서원이다.

성균관 대성전의 현판과 도산서원의 현판은 석봉 한호의 친필이다.

 

사액서원 (조선 시대 국왕으로부터 편액·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 받아 그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

이러한 서원을 사액서원이라 하며 일반 서원과는 격을 달리했다. 1550년 풍기군수 이황의 요청으로

명종이 백운동서원에 「소수서원」이란 친필 현판과 서적·노비를 준 것이 효시가 되었다.

산수유는 곱게 피었는데 명품매화나무는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 

 도산서원에 매화가 피고 있다 다 피지는 않았지만 한두그루가 먼저 피고 있는 모습이다

퇴계  이황(李滉 : 1501~1570)은 매화를 자신의 정신세계를 표상하는 존재이자 인격체로 여기며 ‘매형梅兄’이라

부를 정도로 매화 사랑이 지극했다.

사별한 부인 허씨를 생각하며 '매화'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이곳에 매화와 관련된  이황의 한시 2편을 소개한다.

이황(李滉: 1501~1570)은 조선 전기 성균관 대사성, 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학자로 호는 퇴계(退溪)이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 1560년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짓고 아호를 도 옹(陶壅)이라 정하고 이로부터 7년간 서당에

기거하며 독서와 수양, 저술에 전념하는 한편 많은 제자를 길러 냈다.

퇴계가 매화를 앞에 두고 좋아한 이유는 매화가 음양과 오행의 천심(天心)을 알고 있는 꽃이라 여겼기 때문이라 한다.

매화는 우주의 가득 찬 음기(陰氣)가 끝나고 양기(陽氣)가 모이기 시작할 때 처음으로 피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퇴계가 단양 군수를 그만두고 떠날 때 친분을 맺은 기생 두향(杜香)으로부터 매분을 선물로 받았다.

두향은 퇴계 재임 시절 한 번 만나고 그 후 다시 못 만났지만 퇴계의 인품을 소중히 생각하고 평생 수절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퇴계가 매화에 더욱 애착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퇴계가 임종할 때 마지막 말이 “저 매화에 물을 주라” 였다고 한다.

현행 천원권 지폐 앞면에는 퇴계의 초상화와 명륜당 그리고 선생이 좋아한 매화가 그려져 있다

퇴계가 두향에게 보낸 

黃卷中間對聖賢 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며

虛明一室坐超然 비어 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梅窓又見春消息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

莫向瑤琴嘆絶絃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을 말라

步躡中庭月趁人(보섭중정월진인)  뜰을 거니니 달이 사람 따라오고

梅邊行趫幾回巡(매변행교기회순)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배회했네

夜深坐久渾忘起(야심좌구혼망기)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남을 잊었더니

香滿衣巾影滿身(향만의 건영만 신)  매화향 옷에 가득 달그림자는 몸에 가득

玉堂憶梅(옥당억매) 옥당(성균관)에서 고향에 두고 온 매화를 생각하다

樹庭梅雪滿枝(일수정매설 만 지)    뜰 앞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 피니
 風塵湖梅夢差池(풍진호매몽차야)   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玉堂坐對春宵月(옥당좌대춘소월)   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에 달을 대하니

鴻雁聲中有所思(홍안성중유소사)   기러기 슬피 눌제 그대 생각 애절하다.

오늘이 도산서원 춘 향사가 있는 날인가 보다 

도산서원 전교당

전교당은 도산서원의 강당으로 1574년에 세웠다 강당은 유생들이 경학을 공부하는 서원의

중심건물이다

전교당은 대청과 서쪽에 한 존재라는 온돌방이 있다 도산서원의 원장이 머물렀던 한 존재의

문을 들어 올리면 대청까지 트인 넓은 공간이 확보된다 정면에 걸린 도산서원 현판은 

1575년 선조가 내려줬으며 글씨는 한석봉이 썼다

전교당 서쪽 계단 옆에는 높게 만든 돌기둥 위에 반원 양의 돌을 받쳐 놓았는데 이것은 밤에

행사를 할 때 불을 밝히는 정료대이다 전교당 동쪽 뒤편 높은 곳에 사당인 상덕사가 있다

사당인 상덕사에 향사를 지내기 위해서 모여 있고 상덕사 안에서는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엄숙해야 할 곳이기에 들어가지 못했다

서원 안에는 많은 건물들이 있지만 예전에 두 번이나 왔었기에 생략을 했다

열정

                   도산서당의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로 역경(易經)의 정(井卦) 정열 한 천식에서 의미를 취하였다

                   우물은 마을이 떠나도 옮겨가지를 못하고 퍼내도 줄어들지를 않는다

                   이처럼 무궁한 지식의 샘물을 두레박으로 하나하나 퍼내어 마시듯  자신의 부단한 노력으로

                   심신을 수양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퇴계선생께서 쓰시던 유품 책상형 소반. 투호. 도자기형의자

퇴계선생의 유품 

서원앞 광장에 서 있는 처진 왕버드나무

시사단 

도산서원의 자세한 것을 보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s://kts4500.tistory.com/7396433

남안동 톨게이트로 이동 중에 길거리에서 만난 사과를 파는 차량에서 

15개들이 한 상자에 3만 원 카드는 되지 않고 자동이체로 해달라고 한다

요즘 사과 하나에 5천 원이라는데 횡재를 한 기분이다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오른 것 같다 

 

Solo Hay Una Para Mi (오직 나만을 위해 있어 주오) - Semino Ros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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