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포 과메기문화관에서 마지막 코스 이곳 호미곶으로 왔다
몇 번 왔던 곳이라 간단히 둘러본다
명칭 유래
호미곶은 16세기 조선 명종 때 풍수지리학자인 남사고(南師古)가 『산수비경(山水秘境)』에서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기술하였고, 백두산은 호랑이 코,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설명하였다.
김정호(金正浩)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국토 최동단을 측정하기 위해 영일만 호미곶을
일곱 번이나 답사 측정한 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동쪽임을 확인하여, 호랑이 꼬리 부분이라고
기록하였다. 일명 장기곶(長鬐串), 동외곶(冬外串)이라고도 한다.
새천년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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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 등대
대한민국 지도상 호랑이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등대이다.
이곳을 '호미곶' 혹은 '동외곶'이라고 하는데, 서쪽으로는 영일만, 동쪽으로는 동해와 만나고 있어 일명
대보등대(大甫燈臺)라고도 한다.
높이 26.4m, 둘레는 밑부분이 24m, 윗부분이 17m로 전국 최대 규모이다.
겉모습은 8각형의 탑 형식으로 근대식 건축 양식을 사용하여 지었는데,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만 쌓아 올려, 오늘날의
건축관계자들도 감탄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내부는 6층으로 되어 있으며, 각층의 천장마다 대한제국의 상징무늬인 자두 꽃모양의
문장(紋章)이 조각되어 있다.
1908년에 건립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로, 건축사적·문화재적으로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1901년 조선에서 러시아세력을 몰아내기 위하여 러일전쟁을 준비하던 중 일본의 수산실업전문학교
실습선이 우리 나라 연안의 해류, 어군의 이동상황, 수심 등을 조사하기 위하여 대보리 앞바다를 지나다가 실습선이 암초에
부딛혀 전원이 익사하는 사건이 있었다.
일제는 이 사건의 책임을 한국정부에 전가하면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등 생트집을 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1902년 1월 우리 돈으로 일본인에게 등대시설을 청부시켰다.
상생의 손
호미곶 광장에는 유명한 상생의 손 조형물이 있다 조형물 두 손은 상생을 의미한다.
왼손은 육지에, 오른손은 바다에 세워져 있는데 손은 2000년 새천년을 맞아
두 손 맞잡고 잘 살아보자는 뜻으로 세운 것이라고 한다
호미곶 주변에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불을 밝힌 호미곶 등대를 비롯하여 국립등대박물관,
호미곶해맞이공원 등이 있다.
대보리의 등대는 동해안 및 포항제철소에 출입하는 수송선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호미곶이 위치한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은 1986년 4월 1일에 동해면 대동배 1.2리를
편입해 대보면으로 승격되어 오다가 지역 주민들의 의견 수렴 및 의회의 관련 조례 개정을
통해 2010년 1월 1일부터 대보면에서 호미곶면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는 지난 10년간 호미곶 일대의 관광자원 개발에 따라 호미곶이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자리매김
함에 따라 명칭변경을 통해관광도시로의 이미지 제고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다.
호미곶 돌문어
포항 호미곶은 한반도의 최동단에 위치해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한류와 난류가
교차해 물살이 세고 검은 돌의 복잡한 지형으로 이뤄져 있어 이곳에서 생산되는 ’ 호미곶 돌문어‘는 다른
문어와 달리 쫄깃하고 탄력이 뛰어나 맛이 훌륭하다.
또 호미곶 돌문어는 타우린이 약 34% 함유돼 시력 회복과 빈혈 방지에 효과가 있으며 체력 증강에도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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