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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울산

서생포 왜성과 솔개공원

서생에 왜성이 있다는 것을 진즉 알았는데 죽성은 가보았지만 서생왜성은 가보지 않았는데

강양항으로 가다 보니 이정표에 서생왜성이 1km라고 그래서 강양항과 명선도를 둘러보고

이곳 서생왜성으로 왔다

티보치나

도금양목 티보치나 속 식물의 통칭이다. 아메리카 열대 지역이 원산지로, 멕시코 남부에서 카리브해

를 거쳐 아르헨티나 북부 지역까지 분포한다. 꽃피는 초본이나 관목, 나무로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꽃색은 자주색이나 보라색 등이다. 200개 이상의 하위 종이 있다.

원예 식물로는 브라질 원산의 상록 관목인 티보치나 우르빌레 아나(T. urvilleana) 등이 유명하다.

꽃 범의꼬리

꽃범의 꼬리는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꿀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원산지는 북아메리카로 주로 배수가 잘 되는 곳에서 서식한다.

꽃은 7월에서 9월에 걸쳐 피고, 보라색, 흰색 등이 있다

피소스테기아라고도 한다

부처꽃

 전국적으로 발생하며 산야의 습지에서 자란다. 원줄기는 높이 60~120cm 정도로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털이 없다. 마주나는 잎은 잎자루가 없고 피침형으로 털이 없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6~8월에 개화하며 잎겨드랑이에 3~5개의 꽃이 취산상으로 달려서 전체적으로 총상꽃차례처럼 보이고

홍자색으로 핀다

미국능소화

 미국능소화는 꽃의 크기가 작고, 거의 위로 향하여 피며 더 붉은색을 띠는 것이 보통 능소화와의 차이점이다.

일반적으로 꽃은 연한 주황색이고 꽃받침이 연두색이면 능소화, 꽃이 진한 붉은색이고 꽃받침까지 붉은색이면

 미국능소화 꽃이 붉은색이고 꽃받침이 노란색이면 마담갈렌능소화라고 한다

대만뻐꾹나리(Tricyrtis formosana)

한국 특산종 지정인 꼴뚜기를 닮은 모양새인 한국 뻐꾹나리와

달리 뻐꾸기 가슴의 털 모양을 닮았지만 분홍색과 길게 뻗은 꽃이 다르다.

나리 종류 중 가장 늦게 피며, 한국 뻐꾹나리보다 화려한 귀걸이 같은 모습에

이끌린 원예 마니아들이 가져다 키우기도 한다 개화시기는 7~9월이다

서생왜성은 규모가 상당히 크고 넓다 1단 2단 3단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에 있는 일본식 평산성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축성하였다.

임진왜란 중 왜군은 속전속결로 한반도를 점령한다는 전략이 실패하자, 장기전에 대비해 일본 본토와

바로 이어지는 한반도 남동해안에 성을 많이 지었다.

서생포왜성도 그때 세운 성으로 회야강 하구와 동해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본래 이 지역을 관할하는 조선 수군의 서생포만호진성(西生浦萬戶鎭城)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발발 직후

 이 함락하였다.

서생포왜성 관련된 내용이 최초로 등장하는 고문서는 1593년 5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작성한 명령서(朱印狀)이다.

명령서에서 히데요시는 가토 기요마사와 사가라 요리후사(相良頼房)에게 이름을 알 수 없는 성을

수비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가토 기요마사는 한양에서 울산 서생포에 내려가 축성을 시작한 듯하다.

구체적인 일시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1593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을 세웠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1593년 9월 히데요시는 명령서에서 '강화에 방심하지 말고 성을 견고히 하라.'라고 지시했다.

이러한 일련의 명령서로 보아 가토 기요마사가 서생포왜성의 원형을 만들었다고 추정한다.

축성 과정에서 인근의 조선 백성들을 동원하였고[3], 서생포만호진성을 헐어 그 석재를 이용하였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3년, 명군은 벽제관 전투 이후로 왜군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었다. 

조선은 왜군과 강화함을 완강히 반대하였으므로 명 측의 심유경(沈惟敬)은 조선을 배제한 채로 고니시

유키나가와 비밀리에 교섭하였다. 이에 조선은 승장(僧將) 유정(惟政)을 파견하여 서생포왜성에 주둔하는

 가토 기요마사와 회담하도록 하였다.

1594년 4월 13-16일 서생포왜성 천수(天守)에서 실시한 1차 회담에서 유정은 고니시 측이 심유경에게

비밀리에 제시한 조건을 알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무려 조선의 남부 4도(경기도·충청도·전라도·경상도)를

일본에 할양하라는 것이었다. 조선 조정은 이 회담으로 일본의 무리한 요구조건을 확인하자 명군을 설득하고

고니시와 가토의 갈등관계를 이용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같은 해 7월 12-16일 2차 회담을 치른 후 유정은 조정에 토적보민 사소(討敵保民事疎)를 올려 그간 살핀

왜군 진영의 현황을 보고하고, '적의 숫자가 많지 않으니 전민(全民)을 동원하여 일전(一戰)을 벌일 것'과 '

교린(交隣)하여 적이 돌아가게 한 후 힘을 길러 다시 격돌할 것'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토와 유정의 회담을 보고 대응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는지 같은 해 11월 고니시가 먼저 요청하여

경상우병사 김응서(金應瑞)와 함안 회담을 하였다. 여기서 고니시는 김응서에게 명과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니 조선이 주선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김응서가 거부했다. 조선 측에서 고니시와 별도로 협상하자 

가토는 불만을 품었으므로 12월 23일 유정이 3차 회담을 요청했으나 거부했다.

그 달, 고니시와 심유경 간 비밀교섭으로 작성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거짓 항복문서가 고니시

조안(小西如安) 등의 수작으로 북경의 명나라 조정에 보고되었다.

명 조정은 이 문서를 사실로 믿고 히데요시를 일본국왕으로 책봉함으로써 전쟁을 끝내고자 했다.

고마리 

주홍서나물 

칡꽃 

사위질빵

이런 분위기 속에서 1595년 6월 28일 자 히데요시의 명령서에 따라 부산포왜성·죽도왜성·가덕왜성 등

몇 곳만 남기고 많은 장수들이 순차적으로 일본으로 귀국하는데, 이때 가토는 거점을 서생포왜성에서

기장 죽성리왜성으로 옮겼으므로 서생포왜성은 한동안 폐성이 되기도 했다.

1596년 9월 2일 열린 오사카 회담은 별 탈 없이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10월에 귀국하려던 명 사신 측에 

히데요시가 서신을 보내 '조선 남부를 할양하라는 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조선을 재침(再侵)하겠다.'는

뜻을 천명함으로써 사실상 결렬되고 말았다. 이로써 정유재란이 시작되었다.

1597년 1월 가토는 다시 군사 약 1만 명을 이끌고 조선을 침입한 뒤, 기장군과 양산시를 거쳐 서생포왜성에

재입성했다. 이후 가토는 서생포 일대의 군사적 책임자가 되었다. 같은 해 2월 21일 자 히데요시의 명령서는

수비 책임자로 아사노 요시나가(浅野幸長)를 임명하여 3천 명의 재번을 명령했다.

3월 18일 유정은 가토의 요청으로 3차 회담을 열어 가토를 설득하며 일본의 재침을 막으려 힘썼으나

소용이 없었다. 유정은 즉시 비변사에 상소를 올려 상황의 위급함을 전했는데, 선조수정실록 선조

30년(1597) 4월 13일 자 기사에 내용이 있다.

7월 21일 아사노 요시나가가 서생포왜성에 입성했다. 가토는 북위작전을 위해 출진하고, 9월 아사노

천수각 인근의 증축공사에 착수한 듯하다. 10월 말 가토는 서생포왜성으로 돌아와서

(당시까지는 왜성 중 최동단에 있던) 서생포왜성에서 북동쪽으로 약 35 km 떨어진 최전선 울산에 성을

쌓으면 일본군 점령지의 수비가 한층 강화되리라 여겼다. 이런 의도로 건설한 곳이 바로 11월 10일 자

 히데요시의 명령서에 따라 축성된 울산왜성이다.

둥근이질풀 


12월 중순을 지나 성의 울산왜성의 외곽 부분이 거의 완공된 직후, 울산왜성이 조·명 연합군의 공격을 받았다.

이때 서생포 왜성에서도 구원군을 보냈는데, 당시 회야강 근처에서 매복하고 있던 조명 연합군에게 몰살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의 회야강은 당시 일승강, 대승강으로 불리기도 했다.

울산성 전투가 끝난 이듬해(1598) 1월 22일 자 히데요시의 명령서에 따라 가토는 울산왜성의 수비에만

전념하고, 모리 카츠노부(毛利勝信)·이토 스케타카(伊東祐兵)·다카하시 모토 타네(高橋元種)·아키즈키

다네 나가(秋月種長)·사가라나가 쓰네(相良長毎)·모리 요시나리(毛利吉成) 등 여러 장수가 서생포왜성에

들어와서 수비를 맡았다.

1598년 5월 22일 자 히데요시의 명령서로 구포왜성에 있던 구로다 나가마사(黒田長政)가 서생포왜성의

수비담당자가 되어 왜란이 끝날 때까지 지켰다. 8월 18일 히데요시가 죽자 종전(終戰)이 코 앞까지 다가왔다.

10월 15일 자로 고다이로(五大老)가 구로다 앞으로 보낸 명령서는 '울산이 공격당할 때는 서생포를 단단히

지킬 것, 비상시에는 서생포성을 버리고 부산성으로 빠져나갈 것'을 지시했다.

10월 27일 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명령서는 가토와 협의하여 서생포성에서 퇴각하고

부산성으로 입성하라고 하였다.

11월 24일 가토와 구로다 등이 부산포왜성에서 일본으로 귀국길에 오르자, 명나라의 제독 마귀(麻貴)

편갈송(片碣頌)이 울산왜성과 서생포왜성에 입성함으로써 비로소 성이 함락되었다.

이듬해(1599) 마귀는 서생포왜성 안에 창표당(蒼表堂)을 지어 축하연을 열었다.

무릇

등골나물 

정유재란이 끝난 뒤 서생포진은 수군동첨절제사진(水軍同僉節制鎭)으로 승격되었으나, 본래의 만호진성은

이미 폐성이 되어서 사용할 수 없었으므로 왜성의 장점도 이용할 겸 현재의 장소로 이동했다.

이후 구한말까지 조선 수군의 대진(大鎭)으로 사용되었지만, 기능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왜성은 조선군

성채와 많이 달라서 조선군에 맞게 이곳저곳 개조도 했다. 울산서생 진지도(1872년 작)#을 보면 내성은

비었고 외성에 관청이 있으며, 인근에 마을과 시장이 형성되었다. 지금은 진하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진하리(鎭下里)라는 지명도 서생포진 아래 마을에서 유래하였고, 지금도 성 위에 올라가면 진하해수욕장과

 동해 바다가 아주 잘 내려다보인다.

암 끝 검은 표범나비

쥐꼬리망초

들에 흔하게 자라는 한해살이풀이다. 전체에 짧은 털이 난다. 줄기는 네모지며,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높이 10-40cm, 마디가 굵다. 잎은 마주나며, 난형 또는 긴 타원상 피침형, 길이 2-4cm, 폭 1-2cm,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자루는 2-15mm이다. 꽃은 7-9월에 줄기와 가지 끝에서 이삭꽃차례로 빽빽하게

달리며, 연한 보라색이다. 꽃받침은 5갈래로 깊게 갈라진다. 화관은 길이 7-8mm, 아랫입술이 3갈래로

얕게 갈라진다. 수술은 2개다. 열매는 삭과이며, 선상 긴 타원형이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 흔하게 자생한다. 아시아 온대지역에 널리 분포한다.

땅두릅(독활)

도깨비가지 

블친님께서 새를 담으러 서울에서 이곳 솔개공원까지 다녀가셨다는데 매번 지나다니기만 했지 

한 번도 들려보지 않은 곳 간절곶으로 가면서 잠시 들렸다

차가 몇 대 있더니 빠져나가고 정자에는 부부인 듯 먹거리를 펼쳐놓고 여가를 즐기고 있다 

 

공원이 넓지는 않지만 정자도 두 곳에 있고 벤치도 몇 개 있으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주위에는 작은 해수욕장도 있다

솔개공원

솔개공원은 해안가까지 도보 3분 거리로 이동할 수 있어 방문객, 낚시객들에게 인기 많은 곳이다.

인공적인 조형물을 설치하지 않은 제주도 해안공원을 벤치마킹하여, 아름다운 바다와 더불어

자연친화적 공원을 함께 감상할 수 있게 만들어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해안가에서 바다 풍경을

보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와 앉아서 쉬며 바다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벤치는 여행자의 휴식 공간

및 힐링 공간이다. 산책로가 길지는 않지만 바다가 가깝고, 길옆 대나무와 시원하게 자란 소나무를

따라 걸으면서 울산의 바다와 공원을 한껏 즐길 수 있다. 대한민국구석구석에서

호장근

 마디풀과에 속하는 다년생초. 아시아가 원산지이고, 냇가와 산기슭에 서식한다. 크기는 약 1m이다.

뿌리줄기가 목질로 되어 있으며 속이 비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꽃은 여름에 핀다.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과 중국 등에서 분포하고 있다. 어린잎은 나물로 먹고, 밀원식물과 관상용으로

재배된다. 한방에서 뿌리를 약재로 쓴다.

앞에는 진하해수욕장과 명선교가 보인다 

울산항과 현대중공업 산 위에는 울산대교 전망대도 보인다

망망대해의 동해바다 

매점이 있고 옆에는 이렇게 라이브공연장도 있는데 야간에만 운영하는지 주말에만 운영하는지

현재는 문이 닫혀 있다

장세희가수 검색하니  울산지방에서 활동을 많이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출연할 수가 없어 

이곳 솔개공원 매점을 인수하여 운영하면서 솔개사랑 장세희 라이브공연도 한다고 한다

해당화는 이제 열매를 맺었고 늦게 피는 꽃 이 꽃이 마지막 꽃이 아닐까?

저기 백사장이 있는 작은 해수욕장 예전에 다니며 민가를 하나 사서 별장식으로 

사용하면 좋겠다 생각을 했었는데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 곳이다

바위섬 위에는 갈매기가 날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물빛은 푸르고 하늘은 맑고 

드높기만 한데 아직도 태양열은 뜨겁기만 하다

 

Dons Le Meme Wagon (사랑은 기차를 타고) / Marjorie Noë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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