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경새재 옛길박물관

조선말 고종의 외교고문인 헐버트 박사는 1896년 서양식 악보로 문경새재아리랑을 처음 기록해 서양에
소개했는데, 헐버트 박사가 펴낸 '조선유기'란 잡지에 '한국 음악(Korean Vocal Music)'이란 제목으로
'아라릉 아라릉 아라리오 아라릉 얼싸 배 띄워라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 다 나간다'란 가사가
영어식으로 표기돼 있다.


여행하면서 필요한 문방사우 호패 지도책 등을 전시해 놨다

문경새재아리랑
문경새재 아리랑은 지난번 새재길 포스팅에 소개를 했기에 생략합니다

문경새재아리랑 사설(후렴)




저고리
조선/복제/뒷길이 60cm 화장 63cm
저고리는 겉 검은 면주이고 안감은 성근 면포를 사용하고 사이에 수속을 두툼하게 두어 누빈 솜누비저고리다
겉깃은 내어 달린 목판깃이며 안깃은 섶에 거쳐져 있는 목판 깃이다 옆선에는 5X5cm 사각접음무와
사다리꼴무가 달린 두쪽무형태이다

금선단치마(홑치마)
조선/복제/길이 120cm 전치폭 476cm
제일 마지막인 겉에 입고 있던 심의로 파악된다 의례용 홑치마의 소재는 전체 금선단이면서
또한 치마 앞의 양옆으로 다트를 잡아놓았다 치마의 앞길이와 뒷길이의 차이가 7cm 정도이다


사근도형지안


나침판과 쌈지(좌) 표주박(우)

엽전. 칼. 안경

작은 팔도 지도책

갓과 패랭이 등 그 시대의 모자들 그리고 짚신 담뱃대

부싯돌과 부시쌈지. 담뱃대. 담배쌈지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어른들은 부시로 부싯돌을 쳐서 마른 쑥에 불을 붙여 담배대로
옮겨 담배를 피웠던 기억이 난다

미투리와 가죽신 그리고 나막신 (나무를 파서 만든 신)

여러 가지 말에 관련된 물품

말안장

가마

길마
길마는 짐을 많이 싣기 위해 소의 등에 얹는 나무로 만든 도구이다.
길마는 소한테 고생(苦生)과 고난(苦難)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소한테는 십자가와 같은 것이다.
길마는 물건을 양쪽에 골고루 실어서 소가 걸을 때 균형을 잃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조선선비들의 산수기행
선비ㅏ들은 산수를 유람할 때 동행도 많았고 가마꾼의 도움도 많았다
하지만 방랑자 김시습 등 가난한 선비들의 경우는 종만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옥소 권섭의 유행록
금강산 설악산 지리산 가야산 관동팔경영남 영서 호서 호남 관북 해서 기호 등
조선팔도 이름난 명승지를 둘러보고 낱낱이 그 기록을 남겨놓은 작품이다

보부상
부보상이라는 용어는 등짐장수인 부상(負商)과 봇짐장수인 보상(褓商)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이 외에도 '장돌뱅이', '장돌림', '장꾼'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렀다.
조선시대 등 전통 사회에서 장시를 중심으로 지게나 봇짐으로 물건을 가지고 다니며 판매하던 전문 떠돌이
상인, 또는 이들이 속한 단체를 말한다.
중세시대 유럽의 길드나 현대의 조합과 비슷한 뜻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의 지리지
조선시대의 지리지는 전기의 세종실록 지리지 동국여지승람 지방단위의 읍지가 편찬되었으며
1000여 종에 달하는 많은 지리지가 남아 있다

1

18세기 영남대로 지역의 도로망
조선시대 주요 도로는 한양을 중심으로 종착지를 연결하는 방향에 따라 그 이름이 정해졌다
영남대로 역시 말 그대로 한양에서 영남방향으로 향하는 큰길을 말하며 조선 시대에 9개 간선도
로중의 가장 대표되는 도로다

조선시대의 대동맥 영남대로

유곡록(좌) 과거합격자명단(우)


여행자들의 숙식해결법
몇 날 며칠을 걸어서 이동하는 여행객들에게는 숙식해결은 큰 문제다
관리들을 위한 관 역 원 등의 숙박시설이 있었고 일반들을 위한 점 주막 객주 등이 있었다

낙방길
급제자의 금의환향길과 달리 낙방자들은 절망과 좌절 속에 귀향기에 올랐으며
그 과장에서 느낀 쓰라린 심정을 글로 남기기도 했다

장원급제길
과거에 급제한 이들에게는 다채로운 의식과 축하행사가 펼쳐졌다

문과합격교지와 생원합격교지

문경새재과거길
문경새재는 영남과 기호 지방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옛길이었다.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넘나들던 길로, 문경(聞慶)이라는 이름과 옛 지명인
문희(聞喜)에서 드러나듯 ‘경사로운 소식,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는 의미도 과거길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연유로 문경새재는 급제를 바라는 많은 선비들이 좋아했던 고갯길이었다.
그래서 영남은 물론 호남의 선비들까지 굳이 먼 길을 돌아 이 길을 택하기도 했다.
《택리지》에도 “조선 선비의 반이 영남에서 배출되었다”라는 구절이 있음을 볼 때 참으로 수많은 선비와
길손들이 이곳을 왕래하였음을 헤아릴 수 있다.

조선의 과가 제도
조선시대에는 관리를 뽑기 위해 과거제를 시행했다. 조선은 성리학을 이념으로 하여, 고려말의 소수의 혁명파
신진사대부들에 의해 건국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이상대로 모든 관리를 과거를 거쳐 선발하고자 하였다.
왕조 전 기간에 걸쳐 정기적으로 과거가 실시되었다. 과거도 고려의 제도를 따라, 문과·무과·잡과로 크게
구분하였지만, 문(文)을 숭상하는 경향은 여전하여 보통 과거라 하면 문과를 지칭할 정도로 그 비중이 컸다.
따라서 천인(賤人)은 물론, 같은 양반이라도 서얼 출신은 응시할 수 없도록 하였으며, 신분상으로는 일반
서민인 양인(良人)과 양반만이 응시할 수 있었으나, 양인이 급제한 사례는 적어 대개 순수한 양반들만이
합격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고개 하늘재

문경새재를 노래하다

문경새재의 명소

문경새재의 관문과 관방시설

돌고개 성황당과 꿀떡고개

토끼비리를 노래하다

진남교반
Sweet People - L'Absence (떠나간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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