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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광주.제주

나주성과 금성관 향교를 먼저 들리려고 했는데 앞문이 잠겨 있어 관람시간아 아직 안 되었나 해서 이곳 영금문과 금성관을 먼저 돌아보려고 왔다(5/7) 영금문 나주 읍성에서 서성문인 영금문이 2011년에 복원되었다. 밖으로는 돌로 쌓은 옹성이 둘러있고 누각에는 영금문(暎錦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복원을 하면서 ‘나주목여지승람’의 기록을 따랐다고 한다. 동학전쟁 때 금성산 월정봉에서 나주를 공격하였던 농민군의 공격에 함락되지 않고 우두머리 전봉준과 영금문에서 협상했다고 전해진다. 일제 강점기에 동서남북의 모든 성문과 성루가 철거되었다. 중층의 남고문(南顧門)과 달리 단층이고 규모가 작지만 비례도 좋고 거친돌로 쌓여 있는 성곽과 어울림이 좋아 아름답다. 성문 옆에는 맛집인 서문주점이 있다. 주점 평상에 나와 앉아 막걸리 .. 더보기
신안 도초도와 수국공원 전남 신안은 ‘섬의 고장’이다. 유인도, 무인도 다 합치면 그 수가 1000개를 훌쩍 넘는다. ‘1004의 섬’을 자랑한다. 그 가운데 도초도는 고대 한·중 교역로 중 쉼터였다. 옛 중국사람들이 자기네 수도(都)와 비슷한 지형에 초목(草)이 무성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웃 비금도와 다리로 이어지고 우이도로 향하는 배도 들르는 섬이다.(6/10) 전라남도 신안군 도초도는 안 바다에서 먼바다로 나가는 관문이다. 1996년에 개통된 도초도와 비금도를 이어주는 다리의 이름도 그래서 서남문대교다. 서남쪽 바다로 나가는 입구라는 뜻이다. 도초도 바다를 건너야 흑산도와 홍도, 가거도 등 외해의 섬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서남문대교 도초도의 관문인 화포선착장에서 약 4㎞ 구간에 걸쳐 조성된 팽나무 가로수길이다.. 더보기
정읍 허브원 라벤더 두 동생내외와 나 5명이서 부모님 산소에 풀 뽑기하고 1박 2일 여행길에 올라 이곳 허브농원에 왔는데 조금 일러 꽃이 70%정도 개화한 상태다(6/7) 라벤더 통 화식 물목 꿀풀과 라벤더 속에 속하는 25여 종의 식물을 두루 부르는 이름. 지중해 연안 지역이 원산지이다. 상록 소관목으로 잎은 선형이고 회녹색을 띠며, 흰 털로 덮여 있다. 향기는 기름샘에서 나오며, 기름샘은 꽃·잎·줄기를 덮고 있는 별 모양의 조그만 털들 사이에 들어 있다.꽃을 증류해서 얻는 라벤더유는 품질 좋은 향수나 화장품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기름은 색이 없거나 노란색을 띠며, 향기의 주성분은 아세트 산리 날릴· 리날올·피넨·리모넨·시네올 등이다. 우리니라의 라벤더는 주로 프렌치 라벤더와 잉글리시 라벤더가 있는데 이곳은 잉글리시 라.. 더보기
주포 한옥마을과 돌머리해변 함평 나비축제가 4.28~5.7일까지라 해서 들려볼까 해서 왔는데 주차할 곳이 없어 주저주저하고 있는데 안내요원들이 계속전진만 시켜 어떻게 해야되느냐고 물으니 돌아갔다 다시 오라 한다 그래서 순진하게 갔다 다시 와도 똑 같은 얘기만 한다 스톱시켜 놓고 한 대 빠져나가면 한대 들여보내면 될 것을 참 어렵게 진행을 하고 있다 3~40분을 배회하다 어찌하다 자리가 하나 나서 주차구역에 주차를 하고 황금박쥐 동굴로 들어간다(5/6) 저기 보이는 게 황금박쥐 동굴 입구다 들어와 돌아보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받으니 그곳은 주차구역이 아니란다 엄연히 주차선이 4각으로 그어져 있는 곳인데 차가 빠져나갈 수가 없다나 어쩔 수 없이 황금박쥐 사진 한 장 담고 주차장으로 가서 다른 곳 들리지 않고 바로 주포 한옥마을로 향한.. 더보기
함평 임시정부청사 김철선생기념관 옆에는 상해임시정부 청사가 자리하고 있다 아마도 김철선생은 상해임시정부를 빼놓고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옛 임시정부청사를 같이 마련한 것 같다(5/6) 상해임시정부청사(독립기념관) 왜 함평에 재현하게 되었는가? 호남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 선생은 함평 출신으로 신광면 함정리에서 출생하였다.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고 국내에 잠입하여 3ㆍ1 독립운동의 거사를 모의하는 등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김철은 고향에 있는 천석군의 재산을 처분하여 상해임시정부청사를 마련하는데 기여하고 나머지는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하였다. 후에 상해 임시정부의 교통차장, 국무원 회계검사원장, 군무장, 재무장 등을 역임하고 임시정부 수립과 운영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런 숭고한 독립애국정.. 더보기
함평 김철선생기념관 전에도 함평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김철선생과 같은 독립운동가의 기념관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이번 여행계획을 세우며 검색하니 가볼 만한 곳으로 나와서 영광을 거쳐 무안으로 가지 않고 함평으로 왔다 일강 김철선생 기념관 표지석 김철선생 동상 상해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냈고, 한국독립당 14인 이사 중 한 사람으로 활약했다. 1918년 8월 상하이[上海]에서 여운형·선우혁(鮮于爀)·서병호(徐丙浩) 등과 함께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고, 부주무(副主務)로 기관지 〈신한청년〉을 발간했다. 3·1 운동 직전 귀국하여 손병희(孫秉熙)와 군자금모집 및 국제정세에 대해 협의했다. 그 뒤 대한민국임시정부 구성에 참여하여 제1회 임시의정원회의에서 전라도의원에 선임되었다. 1919년 8월 자금조달과 통신연락 및 독립운동가 양성을 .. 더보기
영광불갑사 불갑사는 가을에 꽃무릇이 필 때 찾아와야 제격인데 옆지기가 가보지 않은 곳이라 지나면서 찾아보기로 한다 불갑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1909년에 쓴 〈불갑사창설유서 佛甲寺創設由緖〉에 의하면 384년(침류왕 1)에 마라난타가 창건했고, 805년 (애장왕 5)에 중창했으며 그 뒤에도 여러 차례의 중창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각진 국 사가 머물면서부터 크게 번창했는데 당시에 머물던 승려는 수백 명에 이르렀고, 사전도 10리에 달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80년에 중건한 뒤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팔상전·칠성각·일광당·명부전·요사채 등이 있다. 이밖에 각진국사비(1359)와 여러 점의 부도가 있고 전국적으로 손꼽.. 더보기
원불교 영산성지 원불교 원불교(圓佛敎, Won-Buddhism)는 일제강점기인 1916년 소태산(少太山) 박중빈이 창시한 신흥 종교이다. 2016년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불법(佛法, 부처의 가르침)을 종교의 근원으로 표방하나 창시자(소태산 박중빈)가 《금강경》을 독학해서 창시했던 터라 최제우의 영향을 받은 도(道)적인 영향이 있어 종단의 성립과 조직, 운영에서 기존의 불교와는 관련이 없는 신흥 종교이며 완전한 불살생을 강조하는 불교와 달리 연고(緣故) 없이 살생을 말라는 규칙이 있다. 2016년 창교 100주년을 기념해 원불교 대사전 발간, 문화예술단체 육성, 출판 영상물 제작 보급, 원불교 앱개발, 익산성지 장엄사업, 영산성지 장엄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였다(5/6) 성래원 앞에 기와집 마음이 쉬어가는 곳 .. 더보기
백수해안도로와 칠산전망대 코스를 순번대로 돌아야 시간이 절약되는데 아침부터 법성포 조기거리를 돌아볼 수가 없어 무료하게 기다릴 수도 없고 우선 백수해안도로 드라이브길에 나선다(5/6) 영광대교를 건너는데 또 비가 약하기는 하지만 다시 내리고 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영광대교의 모습 왼쪽 교각 뒤로 백제불교 최초도래지가 보인다 백수해안도로에서 바라본 서해바다 비가 내리고 안개가 끼어 풍광은 별로이고 우리나라 아름다운 길 100선이라는데 두 번째 오는데 그러한 아름다운 길로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서해 낙조 때문인 것 같은데 아침의 풍경은 낙조와는 거리가 멀어 그렇게 보여지는 것 같다 스카이 워크가 있는데 길이가 너무짧다 포토존에서 옆지기 사진도 한 장 담아주고 다시 드라이브에 들어간다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에서 백암리 석구미 마을까지.. 더보기
영광 백제 불교 최초도래지 오늘의 마지막 코스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에 왔다 여전히 비는 세차게 내리고 있고 이제 신발까지 젖어가고 있다(5/5) 이곳은 서기 384년 (백제 침류왕 원년) 인도 승려 마라난타 존자께서 불경등을 가지고 중국 동진에서 건너와 백제 땅에 첫발을 내 디고 불교를 전파하였던 곳 바로 영광 법성포이다 법성포의 백제시대 지명은 "아무 포(阿無浦)"로서 아미타불의 의미를 함축한 명칭이다 그 후 "성인의 불법을 들여온 성스러운 포구"라는 뜻을 명확히 하여 법성포(法聖浦)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처럼 법성포는 불연(佛緣)이 깊은 고장이며 한국의 불교문화사적 정신문명사적으로 매우 유서 깊은 이다 영광군에서는 법성포에 문화적 역사성을 구체화하여 후세에 길이 남겨질 수 있도록 "백제불교최초도래지"라는 기념비적 명소를 조성하였.. 더보기
고창 무장읍성 무장 개갑장터 고창군 무장고을과 영광군 법성포를 연결하는 중간지점인 공음면 석교리. 개갑장터는 만민평등을 주창하며 동학과 서학이 함께하는 국내유일의 종교성지다. 천주교 신자인 최여겸 마티아가 1801년 이곳에서 순교했고, 100여 년 뒤 1894년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 동학접주들과 교도들이 이곳에 모였다가 인근 구수내마을에서 봉기했다. 무장읍성 무장면 성내리에 있는 이 성은 1991년 2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성의 남문인 진무루에서 무장초등학교 뒷산을 거쳐, 해리면으로 가는 도로의 좌편까지 뻗어 있는데 성의 둘레는 약 1,400m, 넓이는 144,949.4m² (43,847평)이다. 성내에는 객사, 동헌, 진무루 등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고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유구들이 산재해 있.. 더보기
지리산 노고단 지인과 노고단갑시다 한마디로 의기투합 3년 만에 다시 찾는 노고단이다 아침에 7시반경에 출발 10시 반경에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을 하였다 (5/16) 성삼재 유래도 담아보고 식당과 슈퍼 휴게소에서 김밥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노고단으로 향한다 벌깨덩굴 참꽃마리 참꽃마리 인지 꽃마리 인지 좀 헤갈림 산길에 자양분이 많아서 인지 무척 컷습니다 성삼재 주차장에서 출발을 할 때는 이렇게 철쭉이 보기 좋게 피어 있는데 올라가면서 바라보이는 노고단에는 이제 피기 시작을 하고 있다 지리산에는 세석평전의 철쭉을 위시해서 거의 꽃들이 연분홍 색 꽃이 대부분이다 2천 년도에는 흙길이었는데 이제 돌을 깔았고 한쪽에는 부직포를 깔아서 걷기 좋게 만들었네 성삼재 주차장에서 노고단까지 대략 4km 지름길로 가면 3.6km 왕복 .. 더보기
고창 학원관광농장 고창읍성에 있을 때는 비가 소강상태여서 돌아다닐만했는데 이곳에 오니 빗줄기가 아주 강하게 뿌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의를 입고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는데 일부는 모두 차량으로 이동을 하고 있다 한 20분 차에서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언제 그칠지 기약이 없는 것 같아 우산을 쓰고 나가본다(5/6) 비구름이 심상치가 않다 이런날 여행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들이지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조금 위안은 된다 우리 부부만 돌아다니면 참으로 멎적을 것 같다 진성의 보릿고개 노래 5~60년대 춘궁기 보릿고개를 젊은이들 빼고는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청보리 밭에 릿고개 노래비가 서있는 것은 그때를 기억하라는 암시 같기도 하다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학원농장 일대는 매년 4월말과 5월 초가 되면 고창 .. 더보기
고창 판소리 박물관 고창읍성을 돌아보고 점심식사 후 이곳 판소리 박물관으로 왔다 고창 판소리박물관 김소희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으로, 아명은 옥희, 호적상 본명은 김순옥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모가 '소희'라는 이름을 다시 지어주었다고 한다. 1920년대에 조선권번 소속의 동기로서 노래, 춤, 기악을 두루 배웠고,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여러 스승들에게 배웠는데 특히 조선성악연구회에서 송만갑과 정정렬의 소리를 많이 배웠고, 그 외에 박동실에게서도 많이 배웠다. 해방 후에도 박록주, 김여란 등 선배 소리꾼들에게 조금씩 소리를 배워 자신만의 소릿제를 짰는데, 속칭 '만정제'가 그것이다. 현재까지도 그녀의 수많은 뛰어난 제자들과 후학들을 통해 활발하게 전승되어 불려지고 있다. 다음에 다시 소개. 박초월(1915~.. 더보기
고창읍성 얼마 전에 옆지기가 고창에 한번 가보자고 하여 이번 연휴를 이용해 다녀오자고 계획을 세웠는데 공교롭게도 일기예보는 이틀간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거의 포기를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고창지역 일기예보를 보니 많은 비가 내리지는 않을 것 같은 예보이다 반반으로 생각하고 강행군에 들어가기로 한다(5/5) 집에서 출발하고 조금 있으니 장대비가 쏟아지는데 전방 주시가 어려울 만큼 내린다 한 가지 희망은 현지에 도착해 부슬비로 변해주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주차를 하고 읍성으로 전진을 하는데 생각대로 빗줄기가 약해져 한 바퀴 돌아보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이곳은 전에 주택지인데 말끔히 정리를 하고 잔디광장과 주차장으로 활용을 하고 있다 고창읍성(高敞邑城)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있는 옛 읍성이다. 1965년 .. 더보기
화순적벽(노루목적벽 보산적벽) 화순적벽은 수자원보호구역 안에 있어 출입금지지구다 화순군청에 적벽투어를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된다 10여 일 전에 블친님께서 예약을 해주셔서 쉽게 접근을 할 수가 있었다 몇 년 전에 멋모르고 갔다가 코로나 시절이기도 했지만 문이 잠겨 있어 되돌아온 일이 있었다 적벽투어는 매주 수요일, 토요일, 일요일만 열리며, 하루 3회(09:30, 13:00, 15:30), 하루 최대 384명 만입 장할 수가 있다(4/23) 화순적벽 초소에서 화순적벽이 바라다보이는 망향정까지는 4.8km. 동복호의 절벽을 따라 비포장도로가 구불구불 휘어지고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버스가 이런 길도 다니나 싶을 정도로 아찔함이 느껴진다. 전남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보산리, 장항리 일대 7km에 걸쳐 있는 붉은 절벽을 ‘화순적벽’이라.. 더보기
정암 조광조 유배지와 영벽정 이곳은 2년 전에 옆지기와 화순 여행하면서 오후 늦은 사간 지나가며 보았던 곳인데 이번에 화순적벽 가면서 들려보았다 사약을 받은 자리에 건물을 지은 애우당(愛憂堂), 현판은 후학 이병현의 글씨다. 적중거가(謫中居家)는 유배생활을 할 때 기거하던 처소로 방 두 칸, 부엌 한 칸의 세 칸짜리 초가집으로, 유배 당시의 누옥을 재현하여 복원하였다. 방 한 칸에는 기묘사화로 귀양 와 있던 정암 조광조 선생과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한 학포 양팽손 선생(갓 쓴 사람)이 함께 담소를 나누는 장면도 재현했다. 유적지에는 선생의 영정을 봉안한 영정각(影幀閣), 영정은 조선 후기의 화가 국오 정홍래(1720 ~ 미상)의 작품이다. 적려유허추모비(謫廬遺墟追慕碑)가 있는 비각은 우암 송시열이 비문을 짓고 동춘 송준길이 글씨를 썼.. 더보기
화순 쌍봉사 창건주인 철감선사의 호를 따라 쌍봉사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철감선사는 847년(문성왕 9)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경문왕 때 이 절을 창건하여 신라 선종구산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기초를 닦았다. 그 후 점차 퇴락한 것을 1081년(문종 35) 혜소국사가 중건했고, 공민왕 때 전라도관찰사였던 김발이 시주하여 중창한 바 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28년(인조 6)에 중건했고, 1667년(현종 8)과 1724년(경종 4)에 중건했다. 중요문화재인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和順雙峯寺澈鑒禪師塔:국보 제57호)과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和順雙峯寺澈鑒禪師塔碑:보물 제170호)가 있으며 이밖에도 극락전·명부전· 요사채 등의 당우가 남아 있다. 쌍봉사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동리산문(桐里.. 더보기
서편제의고장 청산도 본디 4월 5일에 가기로 예약이 됐는데 비로 인해서 10일 늦추어져서 오늘 옆지기와 5시 40분에 집에서 나와 산악회 버스로 완도 여객터미날에 10시 20분쯤 도착 10시45분에 승선 11시에 출발을 한다 완도여객터미널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우리가 타고 나갈 청산도 농협에서 운영하는 퀸청산호다 여객선에서 바라본 완도항의 모습 여객선에서 바라본 완도 읍내 풍경 완도타워전망대 전복양식장 약1시간걸려 청산도항에 도착했다 배가 도착할 때마다 농악대가 나와서 환영공연을 하고 있다 청산도 둘레길 안내도 배에서 내려 순환버스에 오르는데 대만원이다 겨우 올라 탔는데 무조건 천 원이다 서편제 촬영지를 지나 범바위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범바위까지는 셔틀버스가 있어 장애인차 외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길도 좁아서 교행하기도.. 더보기
광양 옥룡사지와 동백 동행했던 지인의 제안으로 이곳 옥룡사터로 왔다 옛날에 부근에 배운산은 한번 올라봤는데 옥룡사지는 초행길이다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옥룡사지는 아늑하게 보이며 둘레에는 동백나무숲으로 둘러 싸여있다 광양 옥룡사지(光陽 玉龍寺址)는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에 있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절인 옥룡사의 터이다. 1998년 8월 3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07호로 지정되었다. 옥룡사지는 신라 말기의 뛰어난 고승이자 한국풍수지리의 대가인 선각국사 도선이 35년간 머무르면서 수백 명의 제자를 가르치다 입적한 곳으로 한국 불교역사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천년의 불교성지이다. 옥룡이라는 지명은 도선의 도호인 옥룡지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옥룡사는 신라 말에 조그만 암자였던 것을 도선국사가 864년에 중수하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