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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광주.제주

경암철길과 은파호수공원 2017년도에 처음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완전 상업지역으로 탈바꿈해서 옛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도 그 때는 낭만이 있었는데 변해버린 모습에서 옛 모습은 찾을길이 없고 철길주변에는 채소도 가꾸고 가건물 판자촌 집들도 많았는데..... 이렇게 선로위를 걸어보는 즐거움도 .... 중학교 다닐 때 철길을 따라 통학을 하면서 곧장 선로위를 몇백미터씩 넘어지지 않고 걸었는데 지금은 5m도 중심이 잡히지 않아 걸을수가 없다 주로 옛 추억의 물건들을 팔고 있다. 더불어 교복을 대여해 주고 촬영을 해주는 상점이나 달고나 상점이 주를 이룬다. 이곳을 걷다보면 시간여행에 돌입한 느낌이다 추억의 교복대여점 달고나 카라멜 쫀드기 검정고무신 등 시대별 유행했던 간식거리와 일상용품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에게.. 더보기
군산 .동국사 .초원사진관 동국사는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본식 사찰이다. 일본 조동종(曹洞宗) 승려 우치다[內田佛觀]가 1909년 8월 군산의 외국인 거주지 1조 통에 세운 금강 선사[금강사]에서 출발한다. 당시 금강사는 '포교소'였다. 우치다는 1913년 군산 지역 대농장주 구마모토[熊本利平]와 미야자키[宮岐佳太郞] 등 29명의 신도에게 시주를 받아 지금의 자리에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하였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군정에 몰수됐다가 1947년 불하받아 사찰 기능을 재개하였다. 1955년에는 '불교 전북 종무원'에서 인수하여, 김남곡[1913~1983]이 이제부터는 ‘ 우리나라[海東國] 절이다’는 뜻으로 '동국사로 등기를 내고, 1970년 대한 불교 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에 등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등록 문화재.. 더보기
일본인가옥 (히로스가옥)과 게스트하우스 여미랑 군산 신흥동은 옛날 일본 강점기에 부유층들이 사는동네 입니다 건축형태는 일본전통 고급주택 목조 2층주택입니다 ㄱ자모양으로 붙은 건물 두채가 있고 두건물사이에 꾸며진 일본식 정원에는 석상과 탑도 있습니다 지붕외벽마감 내부 일본식 정원등 건립당시 모습이 잘 보존되어 건축적 의의가 큰 히로스 가옥입니다 외부에서 바라본 히로스가옥 대지주들과 달리 주위에 많은 배품을 주었다는 집주인 대문이 안채에 비해 잇는듯 없는듯 하나의 통로에 불과하다 일본인 특유의 겸손함 일까 못사는 사람들을 배려 해서 일까 우리 한옥 그리고 사찰을보면 솟을대문에 일주문부터 기를 팍팍 죽이는데 대문치고는 참으로 초라해보인다 이곳이 영화 촬영장으로 활용됐는데 장군의아들 바람의 파이터 타자등 여러영화가 여기서 촬영을 했다합니다 많은사람들이 방문.. 더보기
일제 강점기 군산세관 군산의 근대문화거리를 둘러 보려고 도착한 곳 주차장을 잘 못 입력해 옛 군산세관으로 왔다 정문은 잠겨 있고 옆문으로 들어 갔다 옛 군산세관 대한제국(순종 2년 6월)에 만들어졌으며 당시 전하는 말에 따르면 불란서 사람 혹은 독일 사람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수입하여 건축했다는 설이 있다. 군산세관은 많은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헐리고 본관건물만이 남아 있으며,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의 하나로 현재는 호남관세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1905년 기울어가던 대한제국의 자금으로 시작된 제1차 군산항 축항공사기간 (1905~1910) 중인 1908년 6월에 만들어졌다. 서양식 단층 건물로 건평은 약 69평이었다. 건물의 지붕은 고딕양식이고 창문은 로마네스크 양.. 더보기
김제 망해사와 신시도 펜션에서 내소사에서 채석강에 왔으나 만조로 채석강은 흔적조차 볼 수가 없다 물때르르잘 만나야 되는데 바람이 불고 파도까지 심해서 반대쪽으로 가볼까 하다가 여러번 본곳이라 패스를하고 새만금 방조제로 간다 저쪽은 적벽강 쪽인데거기도 만조시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새만금 방조제를 따라 가는데 전에 보지 못했던 도로가 보이는데 김제쪽으로해서 전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전에 진봉면과 광활면은 몇 번 들렸던 곳인데 정작 이름이 나있는 망해사는 한번도 못 가보았기에 시간도 많아 한번 들려보기로 한다 저기 보이는 물길이 전주 삼례를 거처 익산과 김제로 흘러들어오는 만경강과 서해바다가 만나는 지점이고 이곳 땅은 김제시 진봉면에 해당한다 이 넓은 평원이 모두 새만금에 들어가 있다 새만금 공사가 시작된지 30년이 넘는데 아직도 언제.. 더보기
군산 선유도 아침에 짐 정리해서 이곳 명사십리 해수욕장에 왔다 아직 하늘도 흐리고 기온은 낮아 겨울 같은 날씨 분위기에 맞는 백사장은 아니지만 왔으니 한번 걸어본다(3/20) 선유도 신선이 놀았다는 전설 같은 얘기처럼 신령을 캐릭터로 군산 앞바다에는 40개의 무인도와 16개의 유인도가 무리 지어 있는데 이를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라 부른다. 새만금 방조제와 다리로 연결된 고군산군도는 섬 여행의 낭만과 접근의 편리함을 모두 갖춘 서해안 섬 여행 일번지가 되었다. 고군산군도는 야미도, 신시도,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등 총 56여 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다 위에 무리지어 있는 섬들이라는 고군산군도에 산이 무리 지어 있다는 뜻의 군산(群山)으로 된 것이다. 즉 군산은 '산들이 무리를 지어 있다'라는 섬들의 모.. 더보기
부안 내소사 2주 전부터 클럽회원님댁과 우리 부부 서해안 선유도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를 완료하고 떠날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주말에 비 소식이 있다 왜 이렇게 내가 어디를 계획하면 비가 내리고 날씨가 좋지 않은지 고사라도 지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저쪽에서는 비가 온다고 취소했으면 하는데 숙소도 예약 전액 송금을 했고 본디 비가 와도 떠나는 성격이라 강행군을 주장해 관철시켰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보니 2시까지만 비가 온다 해서 다행이다 안심시키고 내차로 출발을 했다 곰소항에서 젓갈도 사고 점심계획까지 세워 곰소항에 왔다 이곳은 고창과 부안을 경계하는 곰소만이다 저쪽 편에는 인촌 김성수선생과 유명 시인 서정주 선생의 고향땅이다 서해바다는 썰물이되면 갯벌만 드러나 보이는데 역시나 물이 빠져나가고 나니 갯벌과 물길이 보이는.. 더보기
국악의성지 2.흥부마을 1편에이어 2편이 전개됩니다 20세기 전반 판소리 판소리는 식민지를 경험하면서 쇠퇴하게 되었으며 양반층이 애호가 집단에서 사라지자 변화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인기를 누린 이화중선과 임방울 일제 강점기와 명창 유성기의 보급으로 명창들의 춘향가 음반이 나왔다 흥부가 20세기 후반의 판소리 1960년대의 판소리 명창 김소희와 박동진(적벽가 예능보유자) 명창 정광수 춘향가 수궁가 예능보유자 판소리 구성요소 판소리의 기원 판소리 국악의 성지에 대한 해설 국악의 성지 본관 전에는 2층을 개방하여 볼거리가 많았는데 현재는 입장 불가 운상문 내삼문 국악인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 납골당과 묘지들 국악인들의 납골당 가왕 송흥록 선생과 악성 옥보고 선생의 묘 국악 한마당 공연장 국악의 성지 배치도 국악의 성지를 둘러보.. 더보기
남원 국악의 성지 1 민족의 영산 지리산 자락 운봉에 위치하고 있는 국악의 성지는 우리 민족의 전통과 혼이 담긴 국악의 본 고장이요, 성지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국악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염원을 모아 조성하였다. 설립 취지와 목적 남원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춘향가와 흥부가의 배경지가 될 만큼 예로부터 국악의 산실이었으며 오늘날 동편제 판소리를 정형화한 가왕 송흥록이 태어난 유서 깊은 곳이다. 국악은 세계가 인정한 문화유산이며, 우리 민족의 혼이 살아 숨 쉬는 살아있는 역사이다. 동편제 소리의 발상지이며 춘향가 흥부가의 배경지로서 국악의 역사가 보존 전승되어 온 국악 본고장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판소리의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록에 따른 국악의 보존·전승·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여 전통문화의 세계화를 도모하기 위해 바로.. 더보기
동편제 마을과 송흥록선생 생가 황산대첩비 바로 옆이 송흥록 선생 생가가 있다 황산대첩비 공원 대첩교 람천 동편제 : 섬진강 동쪽 지역인 남원·순창·곡성·구례 등지에 전승된 소리로서, 가왕으로 일컬어지는 운봉 출신의 송흥록의 소리 양식을 표준으로 삼는다. 우조(씩씩한 가락)의 표현에 중점을 두고, 감정을 가능한 절제 하며, 장단은 '대마디 대장단'을 사용하여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발성은 통성을 사용하여 엄하게 하며, 구절 끝마침을 되게 끊어낸다. 서편제 : 섬진강 서쪽 지역인 광주·나주·담양·화순·보성 등지에 전승된 소리로, 순창 출신이며 보성에서 말년을 보낸 박유전의 소리 양식을 표준으로 삼는다. 계면조(슬픈 가락)의 표현에 중점을 두며, 발성의 기교를 중시하여 다양한 기교를 부린다. 소리가 늘어지는 특징을 지니며, 장단의 운용 면.. 더보기
이성계의 황산대첩비 고려말 왜구의 침입 때 당대의 명장이며 도순찰사였던 이성계가 왜구를 크게 무찌른 전쟁터이며 벌판이다. 인월면 소재지에서 운봉읍 방면으로 24번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이 황산대첩비를 만날 수 있다. 전촌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우회전, 남천이라는 실개천을 건너면 양지바른 곳에 황산대첩비가 모셔져 있다. 고려 우왕 6년 (1386) 9월, 금강 어귀에서 최무선 등의 공격을 받아 퇴로가 막힌 왜구들은 충청도를 거쳐 함양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지리산을 넘어 운봉 인월역에 주둔하면서 광주를 거쳐 도망치려 하였다. 이에 도순찰사로 임명된 이성계가 군대를 거느리고 퇴로를 막은 다음 신궁이었던 그의 활솜씨로 왜구 장군 아지발도의 투구를 쏘아 벗긴 후 이성계의 의동생 이지란이 벗겨진 이마를 향해 즉시 화살을 쏘아 죽였다. 1.. 더보기
남원 춘향테마파크 만인의총에서 이곳 춘향 테마파크로 왔다 코시 국이라서인지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주차장에는 주말인데도 여유가 많이 있다 바로 주차를 할 수 있는 것도 복이다 들어오는 길초에 남원 향토박물관이 있어 들렸다 테미 파크로 올라간다 춘향촌은 입장료 없이 바로 들어갈 수가 있다 둘다 무료 신분증 제시 입장권 받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심수관 도자기관으로 올라간다 장독대에 여러형태의 토우 익살스러운 모습 웃음이 나온다 도자기를 빗는 남원 도공들 이몽룡 시계방향으로 변사또. 방자. 월매. 향단이 성춘향 일본 자기, 사쓰마 자기의 뿌리 남원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임진왜란의 끝 무렵인 정유재란(1597) 당시 사쓰마(사摩)의 번주(藩主) 시마즈 요시 히로(島솔義弘)는 남원성 전투에 참가하였다. 당시 남원은 전라도의.. 더보기
남원 향토박물관 만인의총에서 가까운 시내부터 보려고 춘향 테마파크로 왔다 전에 한번 와봤던 춘향 테마파크인데 여기 남원향토박물관은 들리지 않아서 이번에는 무엇이 있나 둘러보기로 한다 남원 지역은 예로부터 역사와 전통이 깊은 고장으로 많은 문화유산과 민속자료가 산재해 있다. 오랜 역사를 증거 하는 고대시대의 출토유물, 광한루로 대표되는 수준 높았던 조선시대 양반 문화, 정유재란기 왜적에 대항했던 선열들의 정신과 흔적들이 있다. 또한 남원은 세계적 무형유산인 판소리의 고장이며 『춘향전』, 『흥부전』등 고전 문학의 산실이자 주요 배경지였다. 남원 향토박물관은 산재해 있는 남원의 유형 · 무형의 많은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 보존·전시·연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러한 체계적 수집, 연구, 전시를 통해 인류의 문화 자산을 .. 더보기
남원만인의총 만인의총 만인의총 정문 남원성 전투와 만인의총에 대해서 알기 쉽게 만화로 구성을 해 놓았다 만인의총 순의탑 2000년 12월 건립된 만인의사 순의탑은 정유재란 당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1만 의사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정유재란 남원성 전투모습 1597년(선조 30) 화의의 결렬로 재침한 일본군은 호남·호서 지역을 점령한 뒤 북상할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7월 28일부터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를 대장으로 한 1대(隊) 5만 병력은 사천으로부터 하동을 거쳐 구례로 들어오고, 그 일부는 함양을 거쳐 운봉으로 들어와 남원을 공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당시 조선·명 연합군도 남원을 경상도·전라도·충청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 여겨 전라병사 이복남(李福男), 방어사 오응정, 조.. 더보기
남원 광한루원과. 예촌. 만복사지 순천만 습지에서 바로 남원으로 왔다 일단 광한루원 부근에 숙소를 정하고 저녁식사 후 야간의 광한루원을 돌아보기로 하고 남원 추어탕을 먹으려고 했는데 바로 앞에 있는 한정식집이 보여 한정식으로 급변경 오늘의 메뉴는 제육볶음과 갈치구이 정식이다 이 밥상이 인당 만원이다 부산의 3분의 2 가격이다 서문으로 들어와 완월정부터 만난다 몇 년 안 왔더니 곳곳이 많이 변한 것 같다 여러 조각상들도 보이고 조명 설치도 했고 야경이라 사진이 흐리기는 하지만 완월정과 나무의 모습이 반영으로 비치고 이렇게 완월정을 돌아보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는데 멘트가 나온다 20시까지 야간개장시간 마감이라고 나가 달라고 한다 조금 일찍 들어올 걸 모르고 식당에서 느긋이 앉아 있었더니 낭패네 비석 군 모두가 불망비 아니면 선정비겠지 광.. 더보기
목포 성옥 이훈동 기념관 언제부터인가 목포에 가면 성옥 이훈동 님의 정원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너무 늦었다 지금은 많은 것들이 방문객이 많아 훼손되고 있어 개방을 안 하고 있다고 한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듯이 왔으니 기념관은 한번 둘러보고 가야겠다 주차장은 따로 없고 건물 앞에 4~5대는 주차할 공간이 있어 주차를 할 수 있었다 기념관 소개 목포 유달산 아래 아늑히 자리 잡은 성옥기념관은 조선내화(주)창업자이며 전남일보 발행인 성옥 이훈동 (聲玉 李勳東)선생의 88세 미수(米壽)를 기리기 위하여 2003년 선생의 자녀들이 건립한 문화공간입니다. 전남 문화재 자료 제165호인 이훈동 정원 옆에 대지 1678.8㎡, 건물 739㎡, 높이 9m의 석조 건물은 미려성이 돋보이기도 합니다. 기념관에는 성옥선생님이 미술품 사랑으로 수집.. 더보기
순천만의 철새 블친님께서 순천만의 흑두루미를 어찌나 멋있게 잘 담으셨는지 그리고 비상하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옆지기 김장 끝나기를 기다려 출발을 한다(12/11) 휴일이라서인지 주차장에는 많은 차량이 주차해져 있어 한 바퀴 돌다 떠나는 자리에 주차를 한다. 매표소에 신분증 제출하니 무사통과 열 체크하고 방문자 등록하고 입장 갯벌 갈대 철새의 낙원이라 했는데 관리사무실과 전시관이 있을 것 같은데 아직 한번도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잔디광장에는 낮에 무슨 행사가 있었나 보다 현재 철거중 갈대 습지와 저 앞 용산전망대가 보이고 현재는 밀물인지 수로에 문이 차있고 뻘은 보이지 않는다 갈대는 아직 꽃이 핀 체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드넓은 갈대 평원을 형성하고 있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어디를 가면.. 더보기
목포 갓바위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하루 해가 벌써 다 가고 있다 다른 곳은 모르지만 여기 갓바위는 보여주어야 될 것 같아 서둘러 갓바위로 왔다 여러 해 전에 흑산도 홍도 가거도 여행 때 야간에 평화공원과 음악분수대와 갓바위를 찾았던 일이 있어 부근이 낯익은 모습이다 갓바위로 들어가는 해변데크길 갓바위는 두 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기는 큰 것이 8m이고 작은 것이 6m 정도이다. 목포 8경의 하나이며, 2008년 4월에 영산강변을 따라 해상 보행교가 설치되어 있어 바다 위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보행교는 298m 구간에 설치되어 있으며, 밀물 때 약 1m 정도 올라왔다가 썰물 때에는 바닷물을 따라 내려간다. 주변에는 목포 갓바위 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입구에는 ‘갓바위’라 새겨진 조형물이 있다. .. 더보기
근대문화역사관 제2관 근대문화역사 관제 2관은 제1관에서 2~300m 거리에 있고 이 부근에는 옛 일본인 가옥들이 지금도 남아 있어 외관으로만 보며 지나다녔다 구 동양척식 주식회사 목포지점(舊 東洋拓殖株式會社 木浦支店)은 전라남도 목포시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건축물이다. 1999년 11월 20일 전라남도의 기념물 제174호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 조선 농민의 수탈기관이었던 동양척식 주식회사의 목포지점 건물이다. 동양척식 주식회사는 1908년 일제가 한국의 경제를 독점, 착취하기 위해 한국 내에 설립한 회사로, 목포시에는 중앙동에 자리하고 있다. 사리원 지점과 함께 가장 중요했던 지점으로, 현재 남한 지역에서는 부산과 목포밖에 건물이 남아있지 않다. 규모에서도 부산지점보다 크며, 당시의 공공시설물로는 이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있.. 더보기
목포 근대문화역사 1관 케이블카를 타고 고하도와 유달산을 대충 돌아보고 이곳 근대문화역사관 제1관으로 왔다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이 건물은 1897년 10월 목포항이 개항되고, 1898년 10월 목포 일본영사관이 목포에 설치됨에 따라 영사관으로 지은 것이다. 일본은 영사관이 건립되기 전까지 조선정부로부터 만호청 (1895년 폐진된 목포진)을 빌려 사용하였고, 유달산 고지대에 가건물을 지어 이관하였으며, 다시 현재의 위치인 대의동에 목포일본영사관과 부대시설인 경찰서·우편국 등을 함께 마련하였다. 당초 일본영사는 무안 감리에게 목포 일본영사관 부지 16,028평방미터를 요청하였으나, 이 신청을 접수한 조선 정부는 9,483평방미터 만을 승인하였다. 공사비 7만여 원을 들여 1900년 1월에 착공하여 12월에 완공한 것으로 일본인들.. 더보기